미국의 최초이자 마지막 황제 '노턴 1세'
경제 2013/10/06 12:10 입력 | 2013/10/06 12:16 수정

출처=위키피디아 'Emperor Norton'

출처=위키피디아 'Emperor Norton'

출처=위키피디아 'Emperor Norton'
[디오데오 뉴스=최혜미 기자] 미국의 '노턴 1세' 황제 이야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통령제인 미국에서도 황제가 있었다는 소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실제로 '위키피디아'에 'US Emperor(미국 황제)'를 검색하면 'Emperor Norton(노턴 황제)'가 등장해 많은 이들에게 의문을 갖게 한다.
미국의 최초이자 마지막 황제라 불리는 '노턴 1세'의 본명은 조슈아 노턴으로, 1819년 런던에서 태어나 남아프리카에서 재산을 모은 뒤 49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했다. 53년 부친의 재산인 4만 달러로 미국 쌀 시장에 손을 댔다가 실패해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자취를 감췄던 그는, 59년 샌프란시스코에 다시 나타나 자신이 미국 황제임을 주장했다.
1859년 9월 17일 샌프란시스코 브리튼 지에는 "국민의 강력한 요청으로, 나 조슈아 노턴은 미국 황제가 될 것을 선언한다. 내게 부여된 권한으로 연방 모든 주의 대표자들은 오는 2월 마지막 날, 샌프란시스코 음악당으로 모일 것을 명한다. 이는 악한 폐단을 개선하기 위해 연방법을 수정하고 국내외 안정을 기하기 위함이다"라는 성명문이 실렸다.
황제 즉위식 이후 그는 12월 2일 칙령을 선포, 미합중국의 정부를 해산할 것을 명했다. 이때 버지니아 주지사를 부정부패 인물로 지목하고 켄터키의 주지사로 대신할 것을 명했는데, 시민들이 큰 호응을 보였으며 이후 노턴 1세는 샌프란시스코의 최고 유명인사가 됐다.
이뿐만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만에 다리를 지으라는 명령은 훗날 금문교 건설로 현실화되기도 했다. 유명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그를 왕의 모델로 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란 소설을 출간하기도 했다. 레스토랑 등은 그의 방문이 홍보에 도움이 된다고 해 고급 요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등 '황제'로서 대접을 했다.
그는 군대에서 얻은 옷으로 황제 제복을 만들어 입고 오후가 되면 백성들이 경의를 표하는지 확인하고 하수구와 버스시간표를 점검하며 개 두 마리를 끌고 거리를 돌아다녔다.
노턴 1세에 관한 유명한 해프닝으로는, 그의 옷이 너무 낡자 노턴 1세는 "황제의 낡은 의상은 국가의 수치다"라는 포고를 내려 다음날 시의회에서 새 제복을 위한 예산이 가결됐다고 한다. 그가 데리고 다니던 개 두 마리는 죽은 뒤 노턴 1세가 자주 다니던 레스토랑에 박제돼 장식되기도 했다.
'노턴 1세'는 1880년 거리에서 죽음을 맞이했고, 이 소식이 전해지자 장례 행렬에 3만 명의 군중이 운집해 애도를 표했다.
그의 정체는 골드러시(gold rush) 이후 생겨난 자기 자신을 미국의 황제이자 멕시코의 보호자라 자칭했던 '과대 망상증 환자'였지만, 샌프란시스코 사람들은 이런 노턴 1세를 재미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하며 좋아했다.
실제 그는 유대인이었지만 모든 종교에 공평하였으며 유색인종에 대해 차별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호평받는 인물이다.
샌프란시스코 사람들의 너그러운 시선과 여유 있는 포옹이 한낱 과대망상증 환자를 미국 황제 '노턴 1세'로 존재하도록 한 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한다.
최혜미 기자 [email protected]
대통령제인 미국에서도 황제가 있었다는 소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실제로 '위키피디아'에 'US Emperor(미국 황제)'를 검색하면 'Emperor Norton(노턴 황제)'가 등장해 많은 이들에게 의문을 갖게 한다.
미국의 최초이자 마지막 황제라 불리는 '노턴 1세'의 본명은 조슈아 노턴으로, 1819년 런던에서 태어나 남아프리카에서 재산을 모은 뒤 49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했다. 53년 부친의 재산인 4만 달러로 미국 쌀 시장에 손을 댔다가 실패해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자취를 감췄던 그는, 59년 샌프란시스코에 다시 나타나 자신이 미국 황제임을 주장했다.
1859년 9월 17일 샌프란시스코 브리튼 지에는 "국민의 강력한 요청으로, 나 조슈아 노턴은 미국 황제가 될 것을 선언한다. 내게 부여된 권한으로 연방 모든 주의 대표자들은 오는 2월 마지막 날, 샌프란시스코 음악당으로 모일 것을 명한다. 이는 악한 폐단을 개선하기 위해 연방법을 수정하고 국내외 안정을 기하기 위함이다"라는 성명문이 실렸다.
황제 즉위식 이후 그는 12월 2일 칙령을 선포, 미합중국의 정부를 해산할 것을 명했다. 이때 버지니아 주지사를 부정부패 인물로 지목하고 켄터키의 주지사로 대신할 것을 명했는데, 시민들이 큰 호응을 보였으며 이후 노턴 1세는 샌프란시스코의 최고 유명인사가 됐다.
이뿐만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만에 다리를 지으라는 명령은 훗날 금문교 건설로 현실화되기도 했다. 유명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그를 왕의 모델로 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란 소설을 출간하기도 했다. 레스토랑 등은 그의 방문이 홍보에 도움이 된다고 해 고급 요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등 '황제'로서 대접을 했다.
그는 군대에서 얻은 옷으로 황제 제복을 만들어 입고 오후가 되면 백성들이 경의를 표하는지 확인하고 하수구와 버스시간표를 점검하며 개 두 마리를 끌고 거리를 돌아다녔다.
노턴 1세에 관한 유명한 해프닝으로는, 그의 옷이 너무 낡자 노턴 1세는 "황제의 낡은 의상은 국가의 수치다"라는 포고를 내려 다음날 시의회에서 새 제복을 위한 예산이 가결됐다고 한다. 그가 데리고 다니던 개 두 마리는 죽은 뒤 노턴 1세가 자주 다니던 레스토랑에 박제돼 장식되기도 했다.
'노턴 1세'는 1880년 거리에서 죽음을 맞이했고, 이 소식이 전해지자 장례 행렬에 3만 명의 군중이 운집해 애도를 표했다.
그의 정체는 골드러시(gold rush) 이후 생겨난 자기 자신을 미국의 황제이자 멕시코의 보호자라 자칭했던 '과대 망상증 환자'였지만, 샌프란시스코 사람들은 이런 노턴 1세를 재미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하며 좋아했다.
실제 그는 유대인이었지만 모든 종교에 공평하였으며 유색인종에 대해 차별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호평받는 인물이다.
샌프란시스코 사람들의 너그러운 시선과 여유 있는 포옹이 한낱 과대망상증 환자를 미국 황제 '노턴 1세'로 존재하도록 한 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한다.
최혜미 기자 [email protected]
뉴스&핫이슈! 디오데오(www.diodeo.com)
Copyrightⓒ 디오데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