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출입거부사태, 신라호텔을 살려두기엔 '쌀'이 아깝다
기타 2011/04/15 15:02 입력 | 2011/04/15 17:0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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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호텔 전경 (출처 - 신라호텔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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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호텔 영빈관, 침략의 핵심인 이토 히로부미를 기념하려던 '박문사'가 있던 자리에 만든 건물이다(출처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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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놈을 살려두기엔 쌀이 아깝다'는 말은 우스갯소리로 널리 퍼졌다. 신라호텔을 곱게 살려두기엔 너무도 많은 것들이 아까워졌다. (출처 - joysf.com)

'신라호텔 한복 출입금지' 사건이 퍼진 지 며칠의 시간이 지났다. 유명 한복디자이너 이혜순 씨가 약속에 참석하려다 신라호텔 뷔페식당 측으로부터 출입을 제재당하면서 불거진 이 사태는 온라인과 SNS를 통해 일파만파 소식이 퍼져있고, 심지어는 권위있는 외신에까지 해외토픽으로 보도되어 국제적인 망신으로 확대된 상태다. 특히나 이런 문제에 가만히 있을 리 없는 일본 여론의 조롱섞인 반응까지 보도되면서 국가의 위신은 차마 고개를 못 들 만큼 민망하게 떨어져 있는 상태다.



급기야는 정부 관계자의 입에서도 이 사건이 언급되기에 이르렀다.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14일 있었던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이하 문광위) 전체회의에서 신라호텔 사건을 언급했다.



하지만 이날 정 장관의 발언 말고도 눈길을 끌었던 이가 있다. 연예인 출신의 문광위 위원인 미래희망연대 김을동 의원이다. 그늘 이날 회의에 한복을 입고 참석해 정 장관을 상대로 질의를 던졌는데 그 내용이 절창이다..



자세한 발언 내용은 다른 보도자료에 있을 테니 생략하더라도 이 말만은 단연 압권이다. 질의를 시작하며 꺼낸 첫 마디가 “신라호텔 뷔페를 가려고 한복을 입고 왔다”고 말했다. 지금 당장 이러고 가도 이혜순 디자이너에게 하던 것처럼 자신에게 그렇게 대할 수 있겠느냐는 의미의 발언이었다.



'시대의 풍운아'였던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그 호탕함, 좋다 이거다. 하지만 난 김 의원이 이 말을 알아뒀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뚱맞은 생각을 했다.



"네놈을 살려두기엔 '쌀'이 아까워."



지금도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헐리우드 액션배우 척 노리스 주연의 '스트롱 맨' 비디오케이스에 적힌 헤드라인이다. 주연 배우의 무지막지한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건 좋았으나 미국 영화에 '쌀'이라는 동양적인 키워드를 집어넣은 그 이상야릇한 부조화에 많은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던 바로 그 말이다.



진짜 구구절절한 호텔 측의 진실이 있었다 치더라도 애초에 손님들에게 유의해서 다니라고 말하지는 못할망정 원체 그렇게 생긴 옷을 아예 입지도 못하게 막아선 어리석은 행동에 어느 정도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물론 김 의원이 실제로 찾아갈 리가 있겠냐마는, 만에 하나 그럴 일이 있더라도 이런 말을 꺼낸다면 더 임팩트가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다시 문광위 회의가 있던 날로 돌아가서, 정 장관은 "한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이혜순 한복 디자이너에게 출입을 제재한 신라호텔 측에 엄중한 경고가 필요하다.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치라, 그렇게 해줄 수만 있다면 좋겠다. 건드리면 건드릴 수 있는 더 많은 것들이 있다. 비단 한복을 뭐 보듯이 쉽게 이야기해버린 그 문제 하나만일까.



신라호텔이 있는 곳은 서울 중구 장충동이다. 족발로 유명한 그 동네 말이다. 그런데 장충동이 뭐 어쨌냐고? 사실 그 동네는 남산 초입에 있는 동네이고, 조금만 더 올라가면 남산 자연경관지구이다. 말 그대로 녹지라는 말이다. 호텔신라는 녹지 한가운데 들어선 건물 중 하나다.



관련 법령 따위는 아예 없던 1960~70년대, 그저 경관이 좋아보일 거 같다는 생각만으로 남산 위에는 수많은 건물이 생겨났다. 신라호텔, 하얏트호텔이 그랬고, 국립극장이 그랬고, 옛 식물원이나 어린이회관 건물이 그랬고, 지금은 없어진 외인아파트나 리틀야구장이 그랬다.



그런데 지난 1983년부터 남산이 자연경관지구로 지정되면서 이전에 건축된 시설물은 수리 이외 일체의 증개축이 불가능하게 법이 바뀌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권한을 넘겨받은 서울시의회가 이 법령을 덜컥 고쳐버렸다. 새로 건물을 지을 이유가 없는 국립극장 등의 공공시설물이 아닌 이상 개정된 법령의 혜택을 볼 대상은 너무도 뻔했던 것이다.



작년 가을 새롭게 구성된 시의회 의원들은 이에 의문을 제기하고 법령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려 했으나 석연치 않게 부결되었다. 이익 창출을 위해 새로운 시설이 절실히 필요했을 호텔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란 뒷얘기가 있었다. 구실은 '관광경제 활성화'였다.



법령 환원을 주도했던 한 시의원은 "서울 전체 면적 중에서 자연경관지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2% 정도밖에 안 된다. 여기에 관광숙박시설을 허용해도 결국 고급호텔만 혜택을 볼 거라면 차라리 자연경관지구를 보호하는 게 더 낫다"며 부결에 대해 분통을 터뜨렸었다.



그들은 한복논란 이전에도 건드려선 안 될 것들에 너무 손을 많이 댔다. 이윤추구와 이미지만 신경쓰느라 공공의 인식에 자꾸만 반하는 이들의 행보는 차라리 안타깝게 보인다. 그들을 살려두기엔 '신라'라는 이름이 아깝고 그들을 한국의 최고기업 계열사라면서 마지못해 인정해왔던 시간이 아깝다.

노광명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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