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특집] 신(神)이라 불리운 사나이, '드록바'
스포츠/레저 2010/06/11 17:06 입력 | 2011/04/12 15:5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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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에 드록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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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돈신' 호나우두, ''메신' 메시, '토레신' 토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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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의 드록바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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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을 넣은 후 세레머니를 하는 드록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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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록바와 무리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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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록바 패러디물(左), 실제 영업중이라는 드록Bar(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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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어린이들과 함께한 드록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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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의 Lace up & save lives 캠페인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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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선수의 아이를 울린 드록바(左), 깜찍한 드록바의 화보(中), 드록바 친필싸인과 직접그린 자화상(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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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우승 후 드록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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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을 입은 드록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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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당한 드록바(左)와 주범인 툴리오(右)

‘해외에서 뛰는 축구 선수 중’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누구 일까? 이 조건에선 보나마나 박지성이 단연 1위이다. 그럼 조건을 좀 더 세분화해서 ‘해외 축구 선수 중’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누구 일까? 이 질문에는 엄청나게 많은 선수들의 이름이 거론될 것이다. 루니, 메시, 호날도, 등 지금 가장 잘나가는 선수들부터 지단, 펠레, 마라도나 등 은퇴한 전설들까지. 각자의 취향이니 절대적인 1등을 꼽기란 무리수가 있다. 하지만 현존하는 선수 중 가장 한국 네티즌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선수는 ‘神이라 불리운 사나이’, 단연 ‘디디에 드록바(Didier Drogba)’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왜 신으로 불릴까? 축구팬들은 특별히 실력이 좋은 선수의 이름에 ‘신’을 붙여 부르길 좋아한다. 브라질의 호나우도를 ‘호돈신’으로 부르는 것이나 리오넬 메시를 ‘메신’(또는 메시아), 페르난도 토레스를 ‘토레신’으로 부르는 것이 그런 맥락이다. 이런 맥락으로 볼때 드록바를 드록신으로 부르는 것은 특이할 것이 없는 일이다. 그는 타고난 피지컬과 골감각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스트라이커이며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공격수를 꼽으라하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뛰어난 선수이다. 하지만 단순히 실력으로 드록바가 드록신인 이유를 다 설명할 수 없다.





1978년 3월 11일, 아이보리코스트(현재 ‘코트디부아르’로 불림)에 위치한 아비장에서 태어난 드록바는 5살 때 프랑스에서 살고 있던 그의 삼촌이자 축구 선수인 ‘미셸 고바’에게 보내진다. 드록바는 삼촌과 함께 지내며 프랑스 유소년 팀에 입단하려 했지만 향수병이 심해져 3년만에 코트디부아르로 돌아갔다. 하지만 곧 부모님의 실직 때문에 다시 삼촌의 품으로 돌아갔고 고향의 가족들도 프랑스로 이주하여 파리 지역에 정착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축구선수 생활을 시작한 드록바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축구선수로서 성공하기로 마음을 굳히게 된다.





프랑스 4부리그 클럽 르발루아를 시작으로 르망, 갱강을 거쳐 1부리그의 명문구단인 마르세유에 입단한다. 2003/2004 시즌, 리그에서 18골을 기록했고, 챔피언스리그에서 6골을 넣으며 팀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르샹피오나(프랑스 1부리그)의 앙리’라는 별명을 얻은 드록바는 당시 ‘첼시’ 감독이었던 ‘조세 무리뉴’ 감독의 러브콜을 받아 2400만 파운드라는 당시 첼시 최고 이적료 기록을 갱신하며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했다. 첼시에 입단한 드록바는 기존 공격수 ‘크레스포’를 벤치로 밀어내고 주전 공격수자리를 꿰차며 준수한 활약을 해나갔고 2006/2007 시즌에는 20골을 넣어 아프리카출신 최초로 EPL(영국 프리미어리그)득점왕에 오른다.





그러던 중 자신을 전폭 지지해 주던 무리뉴 감독이 첼시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와 불화로 팀을 떠났고 이 일로 정신적으로 영향을 받아 주춤한 모습을 보이며 부진에 빠진다. 이어 부임한 아브람 그랜트 감독,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의 밑에서 좀처럼 부진을 멈추지 못한 드록바는 급기야 ‘첼시를 떠나겠다’고 선언까지 했다. 그렇게 긴 부진의 늪에서 헤매던 드록바는 2009년, 시즌도중 성적부진으로 갑작스럽게 경질된 스콜라리의 뒤를 이어 급하게 부임한 명장 거스 히딩크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조금씩 제 모습을 찾아갔고 AC밀란 출신의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지난 2009/2010 시즌에는 29골을 몰아치며 두 번째로 EPL 득점왕에 올랐다. 특히 2009/2010 시즌엔 33살의 나이를 무색하게 할 만큼 최고 전성기의 모습을 보이며 첼시를 더블(리그 우승과 FA컵 우승)로 이끌었다.





축구선수 드록바의 커리어와 플레이는 분명 정말 뛰어난 최고수준의 공격수가 맞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신이라 불리기엔 다소 무리가 있지 않을까? 그저 축구선수로서의 모습만으로 한국의 네티즌들은 드록바의 사진을 가지고 무수히 많은 UCC를 만들어 내고 ‘드록복음(성경구절을 인용해 드록바의 활약을 적은 유머글)’을 만들어 내며 그를 찬양 했을까? 아니다. 드록바는 한국에선 축구팬들에게나 신으로 불리지만 조국인 코트디부아르에선 정말 말 그대로 신적인 존재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박지성의 존재를 훨씬 뛰어 넘는다.





드록바의 고향인 코트디부아르는 아프리카 서부 지역에 있는 세계 최대 카카오 생산국으로 전 세계 생산량의 40%를 차지한다. 프랑스 식민지였다가 독립한 코트디부아르는 2002년부터 5년간 내전으로 수만 명이 숨지는 등 혼란에 빠졌었다. 반군인 북부 이슬람 세력은 정부를 장악한 남부 기독교 세력이 ‘코코아 수출의 이득을 갈취한다’며 내전을 일으켰다.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가 정부군과 반군의 전쟁 자금으로 사용되면서 ‘피의 초콜릿(Blood Chocolate)’이란 말까지 생겨났다. 하지만 양측의 치열한 공방전은 2005년 10월에 잠시 중단됐다. 디디에 드록바가 당시 코트디부아르 국가대표팀이 2006년 독일월드컵 본선 티켓을 획득하자 TV 생중계 카메라 앞에서 무릎을 꿇고 다음과 같이 호소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조국의 국민 여러분. 적어도 1주일만이라도 무기를 내려놓고 전쟁을 멈춥시다."



드록바의 호소는 정부군과 반군 모두를 감동시켰고, 그 후 1주일동안 코트디부아르에서는 건국최초로 총성이 울리지 않았으며 그리고 2년뒤인 2007년, 코트디부아르 내전은 종식됐다.





신도 불가능할 것 같던 전쟁을 멈추게 한 남자, 그가 바로 신이라 불리는 드록바이다. 꽤나 험악해 보이는 인상과 달리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그는 2007년, 꾸준한 자선활동과 아프리카의 문제점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공로로 UN 홍보대사로 임명되었고 2008년엔 ‘디디에 드록바 자선 협회’를 설립 후 자신의 재산과 구단주의 도움을 얻어 아프리카 구호사업을 시작했다. 2009년엔 본인의 재산 60억을 코트디부아르 종합병원 자금으로 기부했으며 나이키의 아프리카대륙의 교육환경 개선 및 에이즈 치료를 위한 ‘Lace up & save lives’ 캠페인 동참하며 홍보대사로 임명됐다.





강한 선수의 이미지와 따뜻한 인간의 이미지... 이것으로도 충만한 드록바의 매력은 절대 빼놓을수 없는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허당’ 같은 엉뚱한 이미지이다. 두 가지 대표적 예가 있는데 하나는 일본 게임회사인 ‘코나미’에서 만든 인기 축구게임 ‘위닝 일레븐’을 하던 중 자신의 능력치가 너무 낮게 설정 되있는 것에 분개하여 코나미사에 직접 항의했다는 것. 또 한 가지는 첼시 공식 홈페이지 스토어에서 자신의 유니폼 판매 순위를 높이기 위해 40여벌을 몰래 구입했다가 발각된 일화이다. 다른 선수에게 유니폼판매 경쟁에 밀려 혼자 마음고생 했을 드록바를 생각하니 눈물이 날 것 같다.





드록바는 최근 코트디부아르와 일본간의 평가전에서 ‘자살골의 달인’ 툴리오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해 팔꿈치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다. 모든 언론매체들은 드록바의 월드컵 출전 포기를 예상했지만 그는 인간이 보일수 없는 회복력을 보이며 월드컵 출전을 선언했고 팬들은 이 일을 두고 ‘드록바는 스스로 자신이 신(神)임을 인증했다’고 말한다.





드록바가 드록신으로 불리는 이유를 한, 두 가지로 정의 내려 말하긴 어렵다. 뛰어난 축구실력, 따뜻한 마음, 자국에서의 막강한 영향력, 엉뚱한 매력,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은 듯한 육체, 이런 드록바를 대변하는 많은 특징들이 오묘하게 한데 어우러져 ‘드록신’을 창조했고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점점 더 그를 따르는 드록교의 추종자들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제 축구선수로서 전성기를 보일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나이에 접어든 드록바. 그의 전설은 과연 어디까지일지 궁금해진다.





참고로 드록바는 ‘드록신’ 말고 ‘검은 예수’라는 별명도 있다. 이에 관련해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 마지막으로 소개할까 한다. 앞서 말한 드록바에 부상을 입힌 일본의 툴리오에게 드록바의 팬들은 최근 별명을 하나 지어줬다고 한다. 그 별명은 바로...





‘노란 유다’이다.





김태동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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