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김연아, 현실을 홀로 감내하는 이 시대 젊음의 표상
스포츠/레저 2011/05/02 15:01 입력 | 2011/05/02 15:2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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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피디아에 기록된 류현진에 대한 설명(출처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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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는 스케이터다. 하지만 그의 능력은 은반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출처 - 김연아 공식홈페이지 캡처)

2011년 5월 2일 대구구장, 홈팀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3-1 승리를 거둔 만 스물넷의 왼손투수가 있었다. 한 경기를 오롯이 혼자 책임지며 팀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1승을 지켜주었다. 그는 그 나이에 벌써 80승을 거두었고, 통산 1000이닝을 넘겼다. 25번의 완투경기를 펼쳤고, 이번 시즌 초반 너무도 부실한 주변의 도움 때문에 4번의 패전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홀로 팀을 책임질 수밖에 없었고, 그가 나오는 날은 혼자 끝까지 남아있는 것이 제일 팀을 편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의 이름은 류현진이다.



하루 앞서 2011년 5월 1일 러시아 모스크바. 세계피겨스케이팅선수권대회가 프리스케이팅이 있었던 이날, 만 스물하나의 스케이터는 두 번의 점프 실수를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전날 기록한 1위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시상식에서 그녀는 해석이 분분한 눈물을 보였고, 뒤늦게 알려진 사실로는 첫날부터 있었던 발목 통증에 남몰래 이를 악물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연기를 했다고 한다. 이 대회는 그가 무려 1년간 떠나있던 은반에 화려하게 복귀하는 자리였다. 자의반타의반으로 떠나 있었던 무대에서 그는 그의 이름을 헛되이 하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김연아다.



전혀 판이한 종목, 판이한 외모, 판이한 성격의 둘에게서 찾을 수 있는 키워드가 있다. 바로 인내와 긍정이다.



류현진은 프로에 데뷔하자마자 선발로 등판했다. 하지만 그는 그 자리에서 덜컥 승리를 챙겼다. 삼진을 10개나 잡으며 괴물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고교 시절 당한 부상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이 시들했던 데 대한 시위라도 하듯.



류현진이 소속된 팀은 한화 이글스, 그 누가 봐도 도무지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는 최하위 후보다. 그런 환경이 그의 기록을 너무도 돋보이게 만들어버렸다. 팀을 떠받치던 고참들은 모두 은퇴해 일선에서 물러나고 다른 이들이 그를 도와주기엔 역량의 한계가 극심하다.



모두가 자기 혼자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 부담될 만한데도 그는 끝끝내 자신이 왜 에이스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혼자 나오면 7이닝은 식은죽 먹듯 넘기고, 100개는 넘게 던진다. 지난해에는 한 경기 최다탈삼진 기록도 18년만에 깨버렸다. 근 10년 넘게 그런 무지막지한 기록을 보유한 투수가 나오지 않고, 그렇게 될래야 되기 힘든 환경에서 그는 그럴 수밖에 없다. 이번 완투승을 거두기 바로 전에 출전했던 경기에서도 그는 혼자 던졌다. 하지만 타자들은 점수를 뽑지 못했고 그는 또 한 번의 패전을 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게 야구라며 담담히 받아들였다.



벌써 두 해를 연속으로 밑바닥에서 기었다. 벗어나고 싶어도 현실은 만만하지 않다. 그게 너무도 미안함을 주변의 모든 선수들이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류현진은 자신이 경기에 나오지 않는 어느 날에도 주눅들거나 풀이 죽어 있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거의 없다. 자신마저 그런 표정을 지어버리면 팀이 그나마 가질 희망도 덩달아 사그라져 버릴 거라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어서이다.



김연아는 자신이 열일곱 되던 해인 2006년, 세계 주니어무대에서 종합 1위를 차지하면서 일약 국내의 주목을 끌었다. 당시 라이벌로 여겨지던 아사다 마오를 이기면서 별안간 '국가의 명예'를 드높인 인물로까지 격상되었던 것이 그 시절이다. 그저 가능성 있는 선수가 보여준 전에 없던 기술의 완성도와 섬세한 표현력, 그리고 나이를 뛰어넘는 무서운 마인드는 그가 왜 세계적 수준의 피겨스케이터인지를 보여주는 서막에 불과했다.



100년 피겨 역사에 쾌거라고 보도를 거듭하던 언론들, 마음 놓고 연습에 전념할 공간조차 없는 현실에서 튀어나온 참으로 말도 안되는 스타의 출현에 사람들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많은 기업들이 그의 이미지를 빌어다 쓰기를 원했고, 심지어는 정부마저도 자신들의 굳은 머리에서 나오기 힘든 홍보의 원천을 그에게서 끌어오려고 했다. 날개를 단 호랑이마냥 그의 끼는 은반에서만 머물지 않았다. 연예인들도 혀를 내두를 온갖 엔터테이너의 끼가 각종 매체들에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그는 힘들었다. 몸은 끊임없이 부상에 시달렸고, 그러면서도 자신의 노력을 배신하지 않으려 각 대회마다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자신의 기록을 자신이 스스로 깨어갔다. 2010년 올림픽 때 그 기록행진은 절정에 달했다. 그로 인해 남의 나라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던 피겨스케이팅의 존재를 사람들이 인식하기 시작했고, 그의 뒤를 따르는 여러 후배들을 조명받게 만들었다. 그리고 아울러 한없이 냉철하기만 할 것 같았던 그의 눈물을 그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근 1년 동안 그는 소속사를 옮겼고, 코치와 헤어지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었다. 사람들이 그의 앞날에 대해 궁금해했지만 그는 묵묵히 복귀의 칼날을 갈았고 그렇게 돌아왔다. 2위는 결코 나쁜 성적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에게서 시작해 더 이상은 나타나지 않을 지도 모를 대한민국의 피겨스타가 아직은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많지 않은 나이에 이 둘은 너무도 많은 것을 깨달아버렸고, 또 그만큼 성숙해졌다. 젊은 나이에 짊어져야 하는 부담을 이겨내지 못하고 중도에 허물어져버리는 이들이 항상 꽤나 존재해왔다. 하지만 그들은 그럼에도 스스로가 가진 젊은 에너지를 긍정의 힘으로 승화시켰다.



상대팀 흠집내고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각 팀의 악질 야구팬들도 류현진에 대해서는 잘 건드리지 않는다. 남 얘기 좋아하는 사람들마저 자제하게 만들 정도라면 그가 겪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 얼마나 뼈아파 보인다는 것일까.



김연아는 과거 자신을 둘러싼 여러 시끄러운 소문들에 대해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며 개인 홈페이지에 적은 바 있다. 굳게 먹은 마음이 아니라면 결고 쉽게 넘어갈 수 없었을 시련들을 지금을 위한 소중한 자산으로 차곡차곡 쌓아놓았다.



그들보다 더 뛰어난 실력의 선수들은 세상 어디에선가 또 나타날 것이다. 이미 나와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홀로 모든 것을 처리해야 했던 두 선수의 모습을 보면서 녹록치 않은 현실을 홀로 감내해야 하는 신산(辛酸)한 젊음의 예를 보는 것만 같아 아릿해진다.

노광명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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