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데인' 농협전산장애 사태, 부실한 금융전산화 반성이 필요하다
기타 2011/04/18 12:32 입력 | 2011/04/18 14:1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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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산망 장애가 일어난 뒤 한 지점 ATM기에 붙은 안내문(출처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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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산망 장애사태로 인해 곤욕을 치른 농협측이 홈페이지에 올린 사과문(출처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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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의 새 로고, New Happiness라는 뜻을 담았다고 하지만 일련의 사태를 통해 그 뜻이 무색해져 버렸다(출처 - 구글 이미지검색).

광고 잘 하기로 유명한 기업이 몇몇 있다. 그 중에 하나가 현대캐피탈이다. 그런 그들이 해외세력과 결탁된 해커들에 의해 고객 정보가 순식간에 해킹당했다. 범행에 관련된 인물들이 속속 검거되고 있는 형국이지만 여기에 고객들이 받은 충격파는 컸다.



강력하다고 생각했던 국내 굴지의 금융회사 정보의 자물쇠가 이토록 허망하게 풀리고 나니 여기서부터 현대캐피탈은 '신용'이라는 말을 꺼내기가 머쓱해져 버렸다.



차라리 이건 누가 그랬는지 추적해보면 알기라도 했다. 그 며칠 뒤엔 정말 서로가 서로에게 묻고 싶을 만큼 더 답답한 사태가 일어나고 말았다.



벌써 지난 주의 일이다. 12일 농협의 전산망 내부에 있던 정보들이 삭제되면서 장애를 일으켜 발생된 최근의 사태를 두고 대체 어디에 하소연을 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을만큼 혼란스러운 지경에 이르렀다. 기다리다 못한 정부와 금감원도 농협에 제재를 가하겠다면서 엄포를 놓고, 서버의 관리를 맡겼던 IBM의 관련자까지 벌써 이른 시기에 조사까지 해 봤다.



농협은 하루가 멀다하고 '언제까지 복구하겠다'는 말만 규칙적으로 쏟아낼 뿐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뭔가 뚜렷한 이유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본인들 머리가 더 답답할 지경일 지 모른다.



나의 학창시절 동기 중 농협에 근무하는 이가 있다. 며칠 전 술자리가 있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사안이 사안인지라 전산장애 사태가 화제로 떠올랐다. 그 친구는 그간의 상황에 대해 짧게 이야기했다.



"그렇게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던 단골들이 사건 터지고 나니까 죽일 듯한 표정으로 지점에 들어오더라고. 우리 있는 지역은 그나마 별 탈 없이 넘어간 축에 낀다. 안산의 모 지점은 사람들이 '봉기'를 해서 대당 수천만원 씩이나 하는 ATM기를 부숴버렸다는 소리도 있고."



자신도 확인할 길 없는 이야기들이 섞이긴 했다만 그래도 더 현실적이고 거친 말들이 오가는 일선 지점에 근무하는 사람의 이야기니 못 믿을 말도 아니었다.



같은 자리에 있던 다른 친구는 자신이 거주하는 방세를 지불해야 되는데 하필 그 돈을 농협에 맡겨놓은 상태라 크게 곤욕을 치르다가 잠시 정상화된다는 소식을 듣고 그 때를 기다려 겨우 약속을 지켰다는 이야기를 보탰다.



이토록 길고 지리하게 끌고 간 적이 없었다. 피해자의 입장인 고객들은 화를 내고 분통을 터뜨리는 단계를 이미 며칠 전에 넘어섰다. 대체 어디서 원인을 찾아야 하는지부터 아무도 모르고 있다.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마치 패닉상태에 빠져버린 느낌이다.



처음 며칠은 농협 측의 계속된 거짓 해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다음 날이면 복구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예전처럼 평이한 대응을 해놓고 손을 보려 한 낌새가 느껴졌다. 하지만 손을 대면 댈수록 상처의 깊이가 생각보다 깊었다. 그들은 이 때를 계기로 전에 없이 당황했을 것이다.



급기야 17일에는 신용카드 거래 기록 원장이 훼손된 사실까지 드러났다. 자칫하면 완전히 복구할 수 없다는 말도 떠돌았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기 전부터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시스템을 고의적으로 망치려 했다'는 가설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이 쯤 되면 그런 가능성에 무게가 확실히 실린다. 제대로 마음을 먹지 않은 이상 이런 엄청난 결과가 나타났을까.



피해가 일어난 장소인 농협 자체가 대내외적으로 큰 타격을 입을 것이 뻔해졌다. 안으로는 임직원들 간의 몸 사리기는 물론이고 당분간 웃을 일 자체가 사라져 버린 황량한 직장 안에서 일해야 할 지도 모른다.



또한 밖으로는 자신들을 향해 겨냥된 수많은 화살을 맞아가면서 동시에 진저리를 치고 등을 돌릴 고객들을 달래느라 급해질 것이다. 어느 조직이 완전무결할 수 있겠냐마는, 특히나 그 조직이 농협이기에 그들을 곱게만 바라보지 않아왔던 다수의 사람들에게 "그럼 그렇지"라는 빈정을 얼마간 들어야 가라앉을 수 있을까.



정보관리를 못한 농협이든, 금융계 관리를 못한 금감원이든, 졸지에 '생선 맡은 고양이'가 된 IBM이든 아니면 어디인지 모르게 뒤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볼 막후의 세력이든 누가 그랬냐를 따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누가 그랬는지에 대한 책임소재를 일단 밝혀낸다 해도 근본적으로 위기대처 능력에 이토록이나 취약한 시스템에 대한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찾아본 자료 중에 흥미로운 결과가 있었다. 2010년 8월 말 기준 16개 시중은행의 전산담당자 6240명 가운데 아웃소싱 인력이 3518명(43%)에 이른다는 것이었다. 제2금융권은 무려 80%에 달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내부 인력을 쓰자니 인건비에 발목이 잡히고 차선책으로 선택한 이 방법에 여러 금융기관들이 대놓고 피를 봐버렸다.



가뜩이나 여러 곳에서 유출된 개인정보 때문에 일반 시민들이 느끼는 짜증과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이런 자료를 접하고 나서 "이들도 개인정보유출에 한 몫 거들었을 것"이란 생각에 스스로 한숨짓게 된다. 이번 사태 역시도 언젠가 회복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날 일이 아니고 금융계 전체가 지금까지 해왔던 금융기관 내 정보관리가 너무 해이했던 것은 아닌지에 대한 뼈아픈 반성이 필요하다.

노광명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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