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 만나면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 특정팀 징크스 어떤 게 있나
스포츠/레저 2011/04/01 16:31 입력 | 2011/04/05 09:27 수정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는 옛 속담이 있다. 뭔가 한 가지에 크게 당하고 난 뒤 그와 비슷한 상황이 오면 똑같이 행동하게 된다는 의미다.
스포츠경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누군가 특정 상대만 만나면 이상하리만치 힘을 못 쓰는 경우를 쉽게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해서 징크스라고도 하는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는 무엇이 있을까.
☞ 32년을 떨었다 - 중국축구의 공한증(恐韓症)
대표적인 경우로 '공한증'을 들 수 있다. 세상에 있는 웬만한 운동경기 종목을 식은 죽 먹듯이 제패하는 중국이지만 이상하게 축구에서 한국 대표팀만 만나면 제대로 맥을 못 춘다. 첫 맞상대를 기록한 78년 이후 공식경기에서 그들이 거둔 승리는 단 한 차례.
물론 중간에 한국은 패 기록이 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수록된 '공한증'은 "실제로는 1982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메르데카컵에서 0:1로 진 적이 있다. 이 기록이 사라진 것은 국제축구연맹(FIFA)이 국가대표 간 경기인 A매치의 기준을 강화하였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과거 동남아 지역에서 빈번히 벌어지던 국가대항전들이 변화된 FIFA규정에 충족되지 못해 그 경기는 엄연한 A매치라고 인정받지 않은 '덕 아닌 덕'을 본 것도 있다.
각설하고, 세월은 지나 지난 2010년 2월 10일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에서 중국이 한국에 3 대 0으로 이김으로서 지루한 무승행진을 끝냈다. 하지만 그들이 벗어난 것은 단순한 전적에서 0을 1로 바꾼 것 뿐이다. 실제로 이 때 참가한 한국 대표팀은 1.5진으로서 컨디션과 팀워크 모두 완전치 못했다는 것이 패인으로 작용한 경기였다.
얼마 전 울산에서 있었던 올림픽대표팀 평가전에서도 한국은 시종 우세한 경기를 펼친 끝에 승리를 거뒀다. 스코어가 그에 부응하지 못해 한 골밖에 뽑지 못했지만 양 팀 선수들이 등에 지고 있던 부담의 무게가 여실히 느껴지는 한 판이었다. 올림픽팀의 역대 전적은 11전 10승 1무로 여지없이 한국의 우세.
이 경기가 끝나고 자국의 누리꾼들과 언론들은 애초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듯 자국의 대표선수들을 향해 너나 할 것 없이 맹비난을 퍼부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경기력의 열세를 무모하리만치 거친 플레이로 메우려 하는 중국축구는 그간 수많은 상대선수들을 부상에 신음하게 만들었다. 한국 선수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세계에 명함을 내밀지 못하는 이유가 한국을 넘어서지 못하는 때문이라고도 그들은 말한다. 축구에 대한 트라우마 수준의 열세. 오죽하면 공한증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었을까.
☞ 잊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 현대캐피탈의 대(對)삼성화재 징크스
다가오는 봄이 축구와 야구의 시즌이라면 지난 겨울은 그 자리를 농구와 배구가 채웠다. 특히나 이 두 종목은 어느 특정 팀이 오랜 기간 동안 챔피언의 자리를 지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8~90년대 한국 남녀농구의 철옹성을 구축했던 기아자동차와 삼성생명이 그랬고, 배구의 경우에는 90년대 중반 초호화 멤버로 창단한 남자부의 삼성화재와 여자배구의 20년을 양분했던 80년대의 미도파, 90년대의 호남정유 등을 그 팀으로 들 수 있겠다.
이 중에서 현재도 유효한 삼성화재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들이 챔피언을 거머쥐고 놓지 않을 동안 만년 2인자 자리를 붙박이로 차지하고 있는 현대캐피탈의 징크스 때문이다.
이번 시즌 현대캐피탈이 삼성화재를 상대로 거둔 전적은 플레이오프 포함 8전 1승 7패. 통산 전적도 25승 46패로 확실한 열세다. 최근 펼쳐진 플레이오프에서도 특급용병 가빈의 '몰빵' 논란이 있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지리멸렬하며 셧아웃당해버렸다. 시즌 순위도 앞서고 전력상 우세로 보이는 현대캐피탈이 올시즌 예전같지 못한 모습을 보이며 시즌 중반이 되어서야 전열을 정비해 가까스로 3위에 오른 삼성화재에게 이전과 똑같이 당해버렸다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다.
과거에는 '배구코트의 해태 타이거즈'라고 비유할 만한 고려증권에 밀려 2인자에 머물더니, 삼성화재 창단 이후에도 그 자리에서 벗어날 줄을 모르게 되어버렸다. 물론 프로화가 되고 처음 몇 해는 챔피언을 탈환하는 등 변화된 모습을 보이는가 싶더니 요새 들어 다시 그 무기력함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사실 현대캐피탈은 대졸 예정의 보장된 유망주들을 놓고 삼성화재와 스카웃 전쟁을 심심찮게 벌여왔다. 마치 라 리가에서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가 벌이는 그들만의 전쟁처럼, 다른 팀들로 하여금 '우리가 왜 여기 있어야 할까'에 대한 자괴감마저 드는 경쟁을 벌였지만 승리는 항상 삼성화재의 것이었다.
삼성화재의 위세가 한창이었던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사이 현대는 패배의 악령에서 벗어나고자 선수단 전체가 심기일전 차원에서 삭발도 해보고 감독도 교체해보고 당시에는 규정에도 없던 용병까지 협회의 동의를 받아 기용해봤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들을 결코 뛰어넘을 수 없었다. 그 때의 트라우마가 2011년 봄 현대캐피탈의 앞에 다시 나타난 것일까.
☞ 결국은 '기분' 탓이겠죠
지난 3월 22일 프로배구 플레이오프를 하루 앞두고 'KBS스포츠뉴스'에서는 짧지만 남다른 소식을 보도했다. 현대의 권영민은 "더 잘하려고 하니까 부담이 생긴다"고 답했고 삼성의 여오현은 "집중력과 투지 면에서 업되는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같은 현상은 스포츠 심리학에서 특정 상황에서 시야나 운동능력이 떨어지는 '상태불안'으로 설명된다"
두 팀 간의 이 이상하리만치 특징적인 사실이 얼마나 오랜 역사를 지녔으면 스포츠 심리학까지 동원해서 원인을 설명하려 했을까. 정작 뉴스는 변죽만 울리다가 마무리지어 버렸지만, 학문까지 끌어들였다는 것은 이전과 다른 접근방식이었다.
그간 쌓여온 전적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을 당사자들은 인터뷰에 대답하는 멘트에서부터 온도차이가 극명하게 느껴진다. 쫓는 쪽은 오로지 딛고 올라갈 생각만 하는 탓에 그게 큰 부담이고, 쫓기는 쪽은 설령 진다 해도 '다음이 있지, 져도 본전 아닌가'라는 마인드로 뛴다. 기본적인 부담을 덜 가지고 경기에 임한다는 것이다.
첫 단추를 잘 꿰야 한다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써먹는다. 어느 팀이 특정팀에게 위의 두 경우처럼 당하지 않으려면 상대전적이 얼마 쌓이지 않은 초기에 승부의 균형을 재빨리 자신의 쪽으로 끌어오는 방법밖에 없지 않을까. 그 때 따라잡지 못하면 하나둘씩 누적되어 지긋지긋한 트라우마로 악화될 가능성이 그만큼 클 테니까 말이다.
노광명 기자 hipardnogal@diodeo.com
스포츠경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누군가 특정 상대만 만나면 이상하리만치 힘을 못 쓰는 경우를 쉽게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해서 징크스라고도 하는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는 무엇이 있을까.
☞ 32년을 떨었다 - 중국축구의 공한증(恐韓症)
대표적인 경우로 '공한증'을 들 수 있다. 세상에 있는 웬만한 운동경기 종목을 식은 죽 먹듯이 제패하는 중국이지만 이상하게 축구에서 한국 대표팀만 만나면 제대로 맥을 못 춘다. 첫 맞상대를 기록한 78년 이후 공식경기에서 그들이 거둔 승리는 단 한 차례.
물론 중간에 한국은 패 기록이 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수록된 '공한증'은 "실제로는 1982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메르데카컵에서 0:1로 진 적이 있다. 이 기록이 사라진 것은 국제축구연맹(FIFA)이 국가대표 간 경기인 A매치의 기준을 강화하였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과거 동남아 지역에서 빈번히 벌어지던 국가대항전들이 변화된 FIFA규정에 충족되지 못해 그 경기는 엄연한 A매치라고 인정받지 않은 '덕 아닌 덕'을 본 것도 있다.
각설하고, 세월은 지나 지난 2010년 2월 10일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에서 중국이 한국에 3 대 0으로 이김으로서 지루한 무승행진을 끝냈다. 하지만 그들이 벗어난 것은 단순한 전적에서 0을 1로 바꾼 것 뿐이다. 실제로 이 때 참가한 한국 대표팀은 1.5진으로서 컨디션과 팀워크 모두 완전치 못했다는 것이 패인으로 작용한 경기였다.
얼마 전 울산에서 있었던 올림픽대표팀 평가전에서도 한국은 시종 우세한 경기를 펼친 끝에 승리를 거뒀다. 스코어가 그에 부응하지 못해 한 골밖에 뽑지 못했지만 양 팀 선수들이 등에 지고 있던 부담의 무게가 여실히 느껴지는 한 판이었다. 올림픽팀의 역대 전적은 11전 10승 1무로 여지없이 한국의 우세.
이 경기가 끝나고 자국의 누리꾼들과 언론들은 애초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듯 자국의 대표선수들을 향해 너나 할 것 없이 맹비난을 퍼부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경기력의 열세를 무모하리만치 거친 플레이로 메우려 하는 중국축구는 그간 수많은 상대선수들을 부상에 신음하게 만들었다. 한국 선수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세계에 명함을 내밀지 못하는 이유가 한국을 넘어서지 못하는 때문이라고도 그들은 말한다. 축구에 대한 트라우마 수준의 열세. 오죽하면 공한증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었을까.
☞ 잊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 현대캐피탈의 대(對)삼성화재 징크스
다가오는 봄이 축구와 야구의 시즌이라면 지난 겨울은 그 자리를 농구와 배구가 채웠다. 특히나 이 두 종목은 어느 특정 팀이 오랜 기간 동안 챔피언의 자리를 지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8~90년대 한국 남녀농구의 철옹성을 구축했던 기아자동차와 삼성생명이 그랬고, 배구의 경우에는 90년대 중반 초호화 멤버로 창단한 남자부의 삼성화재와 여자배구의 20년을 양분했던 80년대의 미도파, 90년대의 호남정유 등을 그 팀으로 들 수 있겠다.
이 중에서 현재도 유효한 삼성화재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들이 챔피언을 거머쥐고 놓지 않을 동안 만년 2인자 자리를 붙박이로 차지하고 있는 현대캐피탈의 징크스 때문이다.
이번 시즌 현대캐피탈이 삼성화재를 상대로 거둔 전적은 플레이오프 포함 8전 1승 7패. 통산 전적도 25승 46패로 확실한 열세다. 최근 펼쳐진 플레이오프에서도 특급용병 가빈의 '몰빵' 논란이 있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지리멸렬하며 셧아웃당해버렸다. 시즌 순위도 앞서고 전력상 우세로 보이는 현대캐피탈이 올시즌 예전같지 못한 모습을 보이며 시즌 중반이 되어서야 전열을 정비해 가까스로 3위에 오른 삼성화재에게 이전과 똑같이 당해버렸다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다.
과거에는 '배구코트의 해태 타이거즈'라고 비유할 만한 고려증권에 밀려 2인자에 머물더니, 삼성화재 창단 이후에도 그 자리에서 벗어날 줄을 모르게 되어버렸다. 물론 프로화가 되고 처음 몇 해는 챔피언을 탈환하는 등 변화된 모습을 보이는가 싶더니 요새 들어 다시 그 무기력함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사실 현대캐피탈은 대졸 예정의 보장된 유망주들을 놓고 삼성화재와 스카웃 전쟁을 심심찮게 벌여왔다. 마치 라 리가에서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가 벌이는 그들만의 전쟁처럼, 다른 팀들로 하여금 '우리가 왜 여기 있어야 할까'에 대한 자괴감마저 드는 경쟁을 벌였지만 승리는 항상 삼성화재의 것이었다.
삼성화재의 위세가 한창이었던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사이 현대는 패배의 악령에서 벗어나고자 선수단 전체가 심기일전 차원에서 삭발도 해보고 감독도 교체해보고 당시에는 규정에도 없던 용병까지 협회의 동의를 받아 기용해봤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들을 결코 뛰어넘을 수 없었다. 그 때의 트라우마가 2011년 봄 현대캐피탈의 앞에 다시 나타난 것일까.
☞ 결국은 '기분' 탓이겠죠
지난 3월 22일 프로배구 플레이오프를 하루 앞두고 'KBS스포츠뉴스'에서는 짧지만 남다른 소식을 보도했다. 현대의 권영민은 "더 잘하려고 하니까 부담이 생긴다"고 답했고 삼성의 여오현은 "집중력과 투지 면에서 업되는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같은 현상은 스포츠 심리학에서 특정 상황에서 시야나 운동능력이 떨어지는 '상태불안'으로 설명된다"
두 팀 간의 이 이상하리만치 특징적인 사실이 얼마나 오랜 역사를 지녔으면 스포츠 심리학까지 동원해서 원인을 설명하려 했을까. 정작 뉴스는 변죽만 울리다가 마무리지어 버렸지만, 학문까지 끌어들였다는 것은 이전과 다른 접근방식이었다.
그간 쌓여온 전적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을 당사자들은 인터뷰에 대답하는 멘트에서부터 온도차이가 극명하게 느껴진다. 쫓는 쪽은 오로지 딛고 올라갈 생각만 하는 탓에 그게 큰 부담이고, 쫓기는 쪽은 설령 진다 해도 '다음이 있지, 져도 본전 아닌가'라는 마인드로 뛴다. 기본적인 부담을 덜 가지고 경기에 임한다는 것이다.
첫 단추를 잘 꿰야 한다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써먹는다. 어느 팀이 특정팀에게 위의 두 경우처럼 당하지 않으려면 상대전적이 얼마 쌓이지 않은 초기에 승부의 균형을 재빨리 자신의 쪽으로 끌어오는 방법밖에 없지 않을까. 그 때 따라잡지 못하면 하나둘씩 누적되어 지긋지긋한 트라우마로 악화될 가능성이 그만큼 클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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