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만에 프랑스 '앙리4세' 머리 유골 확인
경제 2010/12/17 10:48 입력 | 2010/12/17 10:5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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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4세의 유골이 발견됐다.
영국 의학전문지 브리티시메디컬저널은 프랑스 레몽 푸렝카레 대학병원 법의학 연구팀은 머리 유골이 감식 결과 앙리 4세임을 확인해줬다고 전했다.
앙리 4세는 1610년 암살되어 묘에 안장됐지만 프랑스 혁명이 벌어지자 1793년에 군중들에 의해 파리 북부 생드니 성당의 왕실묘지를 훼손하는 과정에 머리가 잘린 뒤 버려졌다
연구팀은 검시 결과 오른쪽 콧구멍 위의 11㎜ 길이 짙은 상흔과 귀고리를 착용했던 오른쪽 귓불에 난 광택있는 구멍이 우선 앙리 4세의 초상 사진과 일치한다고 밝혔다. 3D스캐너와 X선 촬영 결과 드러난 좌측 윗부분 턱뼈에 있는 5㎜ 크기의 상처도 1594년에 있었던 또 다른 암살 시도 당시 생긴 상처와 부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연구팀은 붉고 하얀 머리카락과 이가 많이 빠져 있던 불량한 치아상태도 일치하고 남아있는 턱수염 및 콧수염도 당시 시대 특징을 반영한다고 밝혔다.
사망 당시인 1610년과 1793년의 참시 당시 및 20세기 초에 소장자가 각각 뜬 두상 마스크에 드러난 얼굴 골격도 앙리 4세의 초상 특징과 일치했다.
앙리 4세는 죽기 전 이탈리아식 유향 처리를 하라고 말했으며 전문가들은 이 미라에 남아있는 유향의 냄새가 이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도 1450년에서 1650년 사이로 앙리 4세의 생존 기간인 1553년에서 1610년과 맞았다.
한편 유골이 여러 수집가의 손을 거치면서 많이 오염된 탓에 DNA 검사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스위스 취리히 대학의 전문가 프랑크 뤼흘리는 DNA검사가 있었으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하면서 이 때문에 앙리 4세라고 확정할 수는 없지만 연구팀이 앙리 4세로 추정할 수 있을 만큼 범위를 좁혔다고 평가했다.
이 연구 결과는 영국 의학전문지 BMJ(브리티시메디컬저널)에 15일 발표됐다.
디오데오 뉴스팀
영국 의학전문지 브리티시메디컬저널은 프랑스 레몽 푸렝카레 대학병원 법의학 연구팀은 머리 유골이 감식 결과 앙리 4세임을 확인해줬다고 전했다.
앙리 4세는 1610년 암살되어 묘에 안장됐지만 프랑스 혁명이 벌어지자 1793년에 군중들에 의해 파리 북부 생드니 성당의 왕실묘지를 훼손하는 과정에 머리가 잘린 뒤 버려졌다
연구팀은 검시 결과 오른쪽 콧구멍 위의 11㎜ 길이 짙은 상흔과 귀고리를 착용했던 오른쪽 귓불에 난 광택있는 구멍이 우선 앙리 4세의 초상 사진과 일치한다고 밝혔다. 3D스캐너와 X선 촬영 결과 드러난 좌측 윗부분 턱뼈에 있는 5㎜ 크기의 상처도 1594년에 있었던 또 다른 암살 시도 당시 생긴 상처와 부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연구팀은 붉고 하얀 머리카락과 이가 많이 빠져 있던 불량한 치아상태도 일치하고 남아있는 턱수염 및 콧수염도 당시 시대 특징을 반영한다고 밝혔다.
사망 당시인 1610년과 1793년의 참시 당시 및 20세기 초에 소장자가 각각 뜬 두상 마스크에 드러난 얼굴 골격도 앙리 4세의 초상 특징과 일치했다.
앙리 4세는 죽기 전 이탈리아식 유향 처리를 하라고 말했으며 전문가들은 이 미라에 남아있는 유향의 냄새가 이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도 1450년에서 1650년 사이로 앙리 4세의 생존 기간인 1553년에서 1610년과 맞았다.
한편 유골이 여러 수집가의 손을 거치면서 많이 오염된 탓에 DNA 검사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스위스 취리히 대학의 전문가 프랑크 뤼흘리는 DNA검사가 있었으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하면서 이 때문에 앙리 4세라고 확정할 수는 없지만 연구팀이 앙리 4세로 추정할 수 있을 만큼 범위를 좁혔다고 평가했다.
이 연구 결과는 영국 의학전문지 BMJ(브리티시메디컬저널)에 15일 발표됐다.
디오데오 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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