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우(존 데일리) 신부 선종, 평생 노동자-빈민을 위했던 삶.. 감동
정치 2014/06/03 13:49 입력 | 2014/06/03 14:4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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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연합뉴스

[디오데오 뉴스] 정일우 신부가 지난 2일 선종했다.



지난 2일 오후 7시 40분 정일우(본명 존 데일리)신부가 노환으로 선종했다. 향년 79세.



아일랜드계 미국인인 정일우 신부는 1960년 9월 예수회 신학생 신분으로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1963년 실습이 끝난 뒤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4년 뒤 고등학교 은사인 고(故) 바실 프라이스 신부(2004년 선종)의 영향으로 다시 한국을 찾았다.



국내 노동 운동의 선구자로 불리는 정일우 신부는 1966년 국내 최초로 노동문제 연구소를 열어 노동자들에게 노동법과 단체교섭 방법 등을 가르쳤다. 프라이스 신부와 함께 서강대에서 강의하던 정 신부는 1972년 학생들이 유신반대 운동을 하다 당시 중앙정보부에 잡혀 들어간 것을 계기로 한국의 사회운동에 눈을 떴다.



그는 청계천과 양평동 판자촌 빈민들의 삶을 목격한 뒤 본격적으로 빈민운동에 뛰어들었고, 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빈민 의식교육과 판자촌 철거반대 시위를 주도했다. 이 때문에 정일우 신부는 빈민의 ‘정신적 아버지’로 불리기도 했다.



서울올림픽을 앞둔 1980년대. 곳곳에서 철거작업이 진행되자 상계동과 목동 등지에서 철거민을 도왔고 이들의 자립을 위해 ‘복음자리 딸기잼’을 만들어 팔았다. 생전에 정일우 신부는 “판자촌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개발 논리에 밀려 정부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이다.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그들을 외면할 수 있겠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공로를 바탕으로 정일우 신부는 1986년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98년 귀화한 정일우 신부는 충북 괴산에 농촌 청년 자립을 돕기 위한 누룩공동체를 만들어 농촌 운동에 힘을 쏟았다. 그는 2004년 70세 생일을 앞두고 단식 도중 쓰러졌다가 이듬해 중풍으로 다시 쓰러진 뒤 모든 활동을 접고 요양해 왔다.



정일우 신부가 속한 예수회 한국관구는 “평생을 통해 이웃을 위한 봉사와 사랑을 실천하시고 하느님의 품에 안긴 정일우 신부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를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한편, 고인의 빈소는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 영안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4일 오전 7시이며 장례미사는 같은 날 오전 8시 30분 예수회센터 3층 성당에서 열릴 예정이다.

최혜미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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