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특집] 우루과이의 진정한 엘리트 선수, ‘디에고 포를란’
스포츠/레저 2010/06/25 18:09 입력 | 2011/04/12 15:4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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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안 카를로스 코라쏘(左), 파블로 포를란(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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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 포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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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챠바챠와 포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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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유 입단식때의 포를란과 퍼거슨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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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부츠를 수상한 포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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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콤비, 포를란과 아구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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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사회활동중인 포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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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를란의 부인 '사이라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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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골든슈를 수상하는 포를란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외할아버지 ‘후안 카를로스 코라쏘(Juan Carlos Corazzo)’는 전직 축구 선수로, 아르헨티나의 ‘인데펜디엔테’에서 활약했으며 1962년 칠레 월드컵에서 우루과이 대표팀의 감독으로서 월드컵에 참여했다. 또한 아버지 ‘파블로 포를란(Pablo Forlan)’은 ‘뻬냐롤’, ‘상파울로FC’, ‘크루세이로’등 우루과이와 브라질 리그에서 뛰었고 수차례나 팀이 리그에서 우승하는데 기여를 했으며 우루과이 대표팀 선수로서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부터 1970년 멕시코 월드컵, 1974년 서독(지금의 독일) 월드컵까지 연속 3회 출전했다. 게다가 그의 두 명에 삼촌인 ‘호세 파스토리사(Jose Pastoriza)’와 ‘리카르도 보치니(Ricardo Bochini)’ 또한 유명 축구선수로 아르헨티나 리그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바로 우루과이의 공격의 핵, ‘디에고 포를란(Diego Forlan)의 집안이다. 이렇듯 유전자부터 남다른 포를란. 이쯤이면 날 때부터 축구공을 찼을 것 같은 그지만 예상과 달리 유년시절엔 테니스 선수를 지망하던 평범한 소년이었다. 독일출신의 테니스 스타 ‘보리스 베커 (Boris Becker)’를 좋아했던 그는 실제로 자신의 어린 시절엔 축구보단 테니스를 더욱 좋아했고 때문에 작은 테니스 대회도 출전 한 적이 있다고 했으며 16살 때 까지 테니스와 축구를 병행 했다고 한다. 이런 취향은 성인이 된 지금도 남아서 아르헨티나의 미드필더, 캄비아소에게 테니스를 가르쳐 준 일이나 매년 아르헨티나의 테니스 대회를 참관하는 것, 에콰도르 출신의 유명 테니스 선수에게 자신의 유니폼을 선물하는 등 테니스 매니아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피는 속일 수 없는 법, 그는 가족의 영향으로 진로를 바꾸기로 결심하고 12살이 되던 해부터 축구를 시작했다. 15살에 우루과이의 명문구단인 페냐롤의 유스에 입단해 본격적인 축구선수 생활을 시작한 그는 18살 때 아르헨티나로 넘어가 인디펜디엔테와 계약하고 프로 데뷔를 한다. 이 때, 당시 아르헨티나에서 방영되었던 인기 만화에 등장하는 마녀를 닮았다고 해서 그 캐릭터의 이름인 '카챠바챠(Cachabacha)' 가 그의 닉네임이 되었다.







이적 후 두 시즌은 무난히 보냈고 세 번째 시즌인 2000/2001 시즌, 포를란은 아르헨티나 리그의 36경기에서 18골의 골을 넣으며 이름을 널리 알리기 시작했고 이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알렉스 퍼거슨(Alex Ferguson)’ 감독의 눈에 띠여 다음 시즌에 맨유를 통해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한다. (그는 이적 전까지 2001/2002 시즌 18경기에서 12골을 넣으며 절정의 골감각을 뽐내고 있었다) 맨유로 이적이 성사되기 전까지 퍼거슨에게서 하루에 3번이나 확인 전화가 걸려왔다고 하니 그에게 거는 맨유의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이 된다.







그렇게 큰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맨유에 입단한 포를란, 예상과 달리 그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네덜란드 출신의 스타 ‘반 니스텔루이(Van Nistelrooy)’에게 밀려 선발 출전 기회도 제대로 얻지 못했고 그나마 교체로 출전해서도 활약을 하지 못했다. 공격수인 그가 27경기만에 첫 골을 넣었고 맨유에서 뛴 총 95경기 동안 단 17골밖에 넣지 못했으니 성공적이지 못한 커리어임이 분명하다. 계속해서 퍼거슨 감독의 신뢰를 얻지 못한 그는 2004/2005시즌, 당시 에버튼에서 뛰던 ‘웨인 루니(Wayne Rooney)’가 맨유로 이적하자 입지가 더더욱 좁아져 결국 쫓기듯이 스페인의 ‘비야레알’로 이적했다.







축구선수가 실력이 향상되면 게임에 빗대어 쓰는 말이 있다. 바로 ‘포텐이 터졌다’라는 말인데 이때 포를란이 그야말로 포텐이 터지기 시작한다. 이적 첫 시즌에 25골로 바르셀로나의 ‘사무엘 에투(Samuel Etoo)’를 누르고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고, 바로 다음 시즌, 비야레알이 처녀 출전한 챔피언스리그에서 팀을 4강에 올리는 위업을 달성하게 된 것이다. 그 후 준수한 활약을 펼치다가 2007년 여름, 2100만 유로라는 큰 액수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현재의 팀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아틀레티코에서 그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공격수 ‘아구에로’와 함께 환상의 콤비를 이뤄 팀을 유로파리그에서 우승 시키는 등 큰 활약을 해나간다.







실력만으로도 이미 우루과이의 국민적 영웅인 포를란. 하지만 그는 축구실력뿐만 아닌 됨됨이 또한 정상급이다. 늘 겸손한 성품은 말할 것도 없고 2005년 우루과이 유니세프 홍보대사로 임명된 후 아이들의 인권 보장을 위한 활동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그 밖에 여성 인권보장 활동 같은 여러 사회활동에 큰 관심을 두고 앞장서며 가진 자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







또한 사생활적으로도 깨끗해 별다른 스캔들 없이 아르헨티나의 유명 모델이자 부인인 ‘사이라 나라(Zaira Nara)’와 잘지내고 있다. 하긴 이 부분에 대해선 첨부한 그녀의 모습을 보면 굳이 스캔들 날 일이 뭐가 있겠냐마는 포르투갈의 ‘호날두’를 생각하면 포를란은 참 남자다운 남자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끝난것이 아니다. 포를란의 집안은 포를란이 어렸을 때 부터 축구만큼이나 공부도 중요시했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 모국어인 스페인어에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이탈리아어, 영어까지 5개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 이쯤 되면 축구계의 엘리트라는 타이틀을 줘도 무방하겠다. 명문가의 자손이라는 프리미엄에 명성에 걸 맞는 실력, 뛰어난 성품, 가정에 충실한 모습, 게다가 남을 도울 줄 아는 따뜻한 마음까지 두루 갖춘 남자. 포를란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의 엘리트중에 엘리트가 아닐까?





김태동 기자 fernando@diode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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