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인터뷰] '군산' 장률 감독 "시인 박해일·교수 문소리…귀신 같은 호흡"(종합)
연예 2018/11/15 08:0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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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포스터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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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일, 자주 만나 술 마시는 동네 친구"
"이미숙 캐스팅…무작정 만나자 요청, 흔쾌히 수락"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장률(56) 감독은 꼭 자신이 만든 영화 같은 사람이다. 정적인 듯 조용해 보이지만 슬쩍 농을 던져 모인 사람들을 피식 웃게 만든다. 봄날 산책하듯 조용히 대화를 따라가다보면 곱씹어 볼만한 말들도 더러 있는데, 그렇다고 무엇인가 의미심장한 게 아닌가 싶어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질문을 하면 별 것 아니라는 듯 쿨하고 솔직한 답이 돌아와 허탈해 진다.

지난 8일 개봉한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의 제목에 대한 장 감독의 설명도 그렇게 허를 찌르는 구석이 있었다.

"원래 '거위를 노래하다'가 원래 제목이었어요. 그런데 투자사와 배급사가 같이 상의하는 중에 이번 영화에 '군산'이라는 공간이 잘 나온 것 같다. 앞을 '군산'이라고 하고 뒤에 부제로 붙이는 게 어떤가 하더군요. 다른 사람 돈 받고 말 안 듣기 그렇잖아요? 전에 찍은 영화 중에 '경주' 같은 영화도 있어서 크게 이상하지 않고. 저도 나쁘지 않아서 찬성했어요."

장률 감독은 "제목을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로 고쳐서 관객이 많이 들 수 있다면 만족한다"고 한마디를 더 붙여 웃음을 자아냈다. 사실 '경주'와 '춘몽' '풍경' '이리' 등 장률 감독의 영화들은 유독 두 글자 제목이 많다. '경주'의 영향으로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라는 제목은 '한국 소도시 시리즈'를 만드는 게 아니냐는 오해도 살만하다.

장률 감독은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다. '어떤 영화를 만들겠다'고 명확한 기획을 하는 것이 자신의 스타일이 아니란 의미다. 주인공 이름 짓기도 어려워 재직했던 연세대학교 동료 교수들이나 스태프의 이름을 갖다 썼다고 한다.

박해일과 장률 감독은 벌써 '경주'에서 시작해 '필름시대사랑'에 이어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까지 세번째 같은 작품을 찍는다. 그 덕에 박해일은 '장률의 페르소나'라는 이야기까지 듣는다.

"박해일과는 평소에 같이 술을 많이 먹고, 멀지 않게 살고 있고, 자주 만나요. 영화는 이렇게 작고, (박해일은) 스타인데 바쁘지요. 그래도 친해서 혹시 '어느 때 시간이 되느냐'하고 물어볼 수 있는, 아니면 '금년에 스케줄이 어떻게 되는가' 물어볼 수 있는 사이지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는 군산에서 엇갈리는 사랑을 하게 되는 네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다. 한때 시인이었지만, 10년째 하는 일 없이 아버지 집에 얹혀 사는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를 따라 군산을 여행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이번에도 박해일이 주인공 시인 출신 백수 역을 맡았고, 문소리가 매력적인 '돌싱' 송현 역을 맡았다. 두 배우는 이 영화로 처음 만났다.

장률 감독이 박해일과 또 한 번 작업한 이유는 그가 "자기만의 리듬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장 감독은 박해일이 실제 배우를 하지 않았다면 시인을 했을 사람이라면서 "보통 사람들은 시대의 리듬을 따르는데, 박해일은 자기의 리듬을 가진 사람이다. 자기의 리듬을 가진 사람이 시인에 조금 더 가깝지 않느냐"고 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끌려요. 시대의 리듬을 맞게 가는 사람들은 별로 (내 눈에)보이지 않아요. 시대의 흐름을 너무 따라가면 자신의 리듬이 사라지거든요. 그 사람이 궁금한 건 그 사람만의 리듬이 있기 때문이지요. 박해일은 정말 배우를 하지 않았으면 좋은 시인이 되지 않았겠는가 합니다. 이 말을 듣고 환장해서 배우를 때려치우고 시 쓰면 큰일이에요.(웃음) 박해일은 충분히 그럴 사람이죠. 예측 불가능해요."

박해일이 시인이라면 문소리는 똑 부러지는 지성인이다. 장률 감독은 평소 문소리를 "문교수"라고 부르는데, 정작 본인은 그 말을 싫어한다며 웃었다.

"문소리와 같이 앉아 대화를 나눠보면 인생에 대해서 사회에 대해서 뚜렷한 관점이 있어요. 참 지적이고요. 평소에 문 감독, 문 교수라고 불러요. 그러면 (문소리가) 싫어 하지요. 놀랍게도 현장에 가면 그게(교수, 감독의 태도) 다 없어지고 100% 그 캐릭터가 돼버려요. 보통 평소에 지적으로 나오면 현장에서는 부담스럽거든요. 그런데 문소리는 전혀 그게 없어요. 캐릭터에 들어가요. 연기는 좀 애매모호 해야 더 좋은 게 하닌가, 평소에 뚜렷해서 잘 되겠는가 싶었는데,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리더라고요. 아주 좋은 연기자고 감독이고 교수지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는 역순으로 흐르는 영화다. 영화를 두 개로 자른 후 뒷부분을 먼저 보여주고, 그 뒤에 바로 앞부분을 연결하는 식이다. 그에 따라 관객들은 첫 부분에서 관찰했던 것들의 실체를 뒷부분에서 확인하고 그로 인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장률 감독은 영화가 '사실'을 찍는 것이 아닌 '기억'을 찍는 것이라고 했다.

"저는 처음부터 설정을 하고 찍은 영화가 없어요. 삶 자체가 어떤 설정을 하고 산 적이 없지요. 영화는 사실을 찍는 게 아니고 기억을 찍는 것입니다. 기억은 자기 만의 순서가 있어요. 거기에 충실한 겁니다. 기억의 순서에 맞춘 거지요."

영화 속 중국동포에 대한 묘사도 그랬다. 실제로 중국 출신인 장률 감독은 중국 동포들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 등에 대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영화에 에피소드들을 넣은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저 일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조선족 혹은 어떤 특정 사람들을 얘기하면 관점을 얘기합니다. '소외되는 사람들'은 좋은 방면으로 얘기하고 싶어하는 부분이고, 한 부분으로는 '범죄자가 많다' 이런 것도 있죠. 사람마다 생각이 다릅니다. 이상하게 비주류 사람들을 볼 적에 관점으로 보는 것 같아요. 좋은 부분, 나쁜 부분으로 나눠놓고 '관점'으로 봅니다. 그런데 일상에서는 웃기기도 하고 불편해 하기도 하고 그래요. 그 사람들도 그저 일상을 살아가는 거지요. 관점만 얘기하면 일상이 다 없어져요."

이후로 영화에 대한 모든 질문은 "일상이다"라는 답으로 묶였다. 많은 설명을 하지 않는 것은 어찌보면 관객들에게 생각할 여백을 주고 싶은 감독의 의도로도 읽힌다. 하지만 이 역시 '의도'라고 끼워맞추고 싶은 기자의 '관점'일 뿐.

'경주'에 이어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도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한다. 박해일 문소리부터 시작해 한예리, 윤제문, 정은채까지. 특히 근래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중견 배우 이미숙의 등장은 신선한 즐거움을 준다.

장률 감독은 "캐스팅은 용기가 있어야 한다"며 일화를 들려줬다. 영화 속 배우 이미숙을 캐스팅할 때 아무런 연이 없음에도 팬이라 일단 만남을 요청했고 캐스팅에 성공했다는 것. 장 감독은 "사람들이 거절을 어색하게 생각한다"면서 거절 역시 일상으로 받아들이라고 했다.

"이렇게 한 번 만나보자고 제안하려 했는데 스태프가 다 말렸어요.(웃음) 거절 당해도 좋으니 한 번 볼 수 있겠는가, 했어요. 그런데 어? 어느 날 커피숍에서 보자고 해요. 40분간 같이 커피 한 잔을 하는데 '어떤 영화에요' 물었고, 대답했더니 '할게요' 했어요. 되게 '쿨'하게요. 고맙고, 나의 팬심이 맞았구나 싶었지요."

현재 장률 감독은 6년간 교수로 재직했던 연세대학교를 그만두고 나왔다. "막 사는 중"이라는 그는 자신에 대해 "바람이나 희망은 없다. 별 재미없이 사는 사람이다. 사는대로 산다"고 설명했다. 몇몇 작업들을 준비 중이지만 "내일을 어떻게 살지도 모르겠다"는 게 솔직한 생각이다. 작가 출신인 그에게 우문을 던져봤다. 영화 만드는 게 재밌나요, 소설 쓰는 게 재밌나요.

"우리, 재밌어서 사는 거예요? (웃음) 사람의 감정이 있어요. 그 감정이 도달하는 것을 표현할 때 제일 맞는 방식이 저는 영화인 것 같아요. 사실 현장에 가면 고생 밖에 없어요. 후반 작업은 편집실, 녹음실이 박혀있지요. 감독이 멋있다, 재밌다 하고 (영화계에) 들어오면 개고생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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