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오보가 낳은 기적'… 베를린 장벽 붕괴 조력자들
월드/국제 2019/11/09 11:00 입력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1989년 11월9일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을 흉물스럽게 가르고 있던 베를린 장벽이 시민들의 손에 의해 허물어졌다. 1961년 건설된 후 수천명이 탈출을 시도하고 그 중 1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던 역사의 현장은 기적처럼 한순간에 무너졌다. 영원할 것 같던 장벽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것은 자유와 통일을 갈망한 시민의 힘이지만 그 뒤에는 꿈같은 기적을 낳은 조력자들의 도움이 있었다.

1989년 11월9일 밤 동독의 사회주의통일당(SED) 고위 당국자이자 정부 대변인 귄터 샤보프스키는 동베를린의 프레스센터에서 이날 오전 각료회의 결정 사항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연다. 앞서 발표한 동독 시민들의 반정부 시위의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일종의 허울뿐인 '여행완화법안'에 대한 보충 설명 자리였다.

유럽의 미디어 네트워크 유랙티브의 편집장이었던 에발트 쾨니그의 회고에 따르면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이기에 기자회견 분위기는 무겁고 따분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민영통신사 안사의 특파원이었던 리카르도 에르만은 갑자기 "동독인들이 서독으로 30일간 여행하는 것을 허용하는 법이 큰 실수가 아니냐"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정책을 잘 숙지하지 못하고 급하게 나온 샤보프스키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해 서류를 찾으며 더듬거린다. 그러자 다시 독일 타블로이드 신문 빌트의 피터 브링크만과 에르만, 미국의 소리(VOA) 기자 크르지츠토프 야노프스키가 동시다발적으로 '여권 없이인가?' '언제부터인가?' 같은 질문을 쏟아붓는다.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 당시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소개한 녹취에 따르면 실제로는 사실이 아님에도 샤보프스키는 실수로 "내가 알기로는, 지체없이 지금 즉시"라고 대답했다.

수백만이 지켜보던 이 방송에서 이 같은 말이 나오자 독일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에르만 기자는 달려나가 안사에 전화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냈다. 실제로 동독 정부가 내놓은 것은 여행 조건을 일부 완화하는 것뿐이라 사정을 잘 아는 다른 언론사들은 기자회견 내용을 중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잘못된 말에 근거한 사실상 오보인 이 기사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시민들을 더욱더 장벽으로 불러모아 장벽 붕괴를 거스를 수 없게 만들었다.

웹매거진 오지닷컴(OZY.COM)에 따르면 베를린 장벽 붕괴가 시작된 지점인 보른홀머 거리를 가로지르던 검문소를 지키던 하랄드 제거 중령 역시 역사를 바꾼 데 일조한 이다. 방송을 보고 1000여명의 군중이 몰려들자 중령은 상사에게 어떻게 할지를 물으며 30번 이상 전화를 걸지만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한 상부로부터는 지시가 내려지지 않았다.

답답해하는 중령의 독촉에 상사는 국무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중령을 바꿔준다. 장관이 "귀관이 상황을 제대로 평가할 위치에 있느냐"는 말을 하자 중령은 화가 나서 "내 말을 못믿겠으면 그냥 들으라"며 전화기를 군중들이 모여든 밖으로 난 창에 대준다. 그 후 전화를 끊고 중령은 부하들에게 "장벽을 열라"고 지시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지난달 31일 로이터통신과의 독점 인터뷰에서 "역사 그 자체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앞으로 나아갔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속도로 통일을 향해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는게 확연했다"고 베를린 장벽 붕괴 당시를 회고했다.

그러면서 독일 통일이 유혈사태 없이 이뤄지게 된 데 자신의 공도 일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동독에는 38만명의 소비에트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었다. 그들은 병영에서 그대로 머물러 있으라고 명령받았다. 믿을 수 없이 복잡한 과정이 유혈과정 없이 지나갔고 나는 그것에 내 공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ungaungae@news1.kr



저작권자 ⓒ 뉴스1 코리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뉴스&핫이슈! 디오데오(www.diodeo.com)
Copyrightⓒ 디오데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