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구로농지 강제수용, 재심사유는 모두 별개" 피해유족 손
사회 2019/10/23 12:0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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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동 대법원 깃발. © News1 성동훈 기자


(서울=뉴스1) 서미선 기자 = 1960년대 '구로농지 사건'에서 소송사기 등 혐의로 기소돼 유죄판결을 확정받은 농민들이 재심을 거쳐 무죄 확정이 난 까닭은 '별개의 독립된 재심사유'로 인한 것이라 각각 별도의 시정 필요성이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한 사건에서 여러 사람이 공통의 재심사유로 같은 취지의 무죄판결을 받았어도 이를 뭉뚱그려 '하나의 재심사유'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 사람의 무죄판결이 확정될 때마다 그에 따라 재심을 제기할 수 있는 기간도 달라진다는 취지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이모씨의 유족 4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 소송 재재심에서 앞선 재심판결을 취소하고 원고승소 판결했다고 23일 밝혔다.

재판부는 "재심사유는 그 하나하나가 별개 청구원인을 이루는 것"이라며 "여러 개의 유죄판결이 재심대상 판결의 기초가 됐다. 이후 각 유죄판결이 재심을 통해 효력을 잃고 무죄판결이 확정된 경우, 어느 한 유죄판결이 효력을 잃고 무죄판결이 확정됐다는 사정은 별개의 독립된 재심사유라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재심대상 판결의 기초가 된 각 유죄판결에 대해 형사재심에서 인정된 재심사유가 공통되거나 무죄판결 이유가 같아도 달리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구로농지 사건은 1960년대 '구로수출산업공업단지'(구로공단) 조성을 위해 국가가 농민을 강제로 내쫓고 토지를 수용한 사건이다. 이씨 등 농민 85명은 1964년 국가 상대 소유권 소송을 내 1968년 승소 확정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박정희정권은 이 소송에서 증언한 공무원들에게 위증죄를 뒤집어씌우고, 소송을 낸 농민들을 수사해 소송사기 등 혐의로 기소했다. 이 중 26명이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정부는 이를 근거로 농민들이 승소한 민사판결에 재심을 청구해 승소했다. '1차 재심'이다.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농민들을 집단적으로 불법연행해 가혹행위를 하고 권리포기와 위증을 강요한 건 형사소송법상 재심사유"라며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유죄를 확정받았던 사람들은 재심을 청구해 23명이 무죄를 확정받았다.

이씨 유족은 1977년 숨진 이씨를 대신해 2013년 6월17일 '1차 재심'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늦어도 2013년 5월3일께 (소송을 냈던 농민) 김모씨가 재심 무죄판결을 선고받은 사실을 알았는데도 재심제기 기간 30일이 지나 소송을 냈다"는 이유로 각하했고 이는 2014년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이후 이씨 유족은 소송을 냈던 다른 농민 박모씨(사망) 등이 받은 '재심 무죄' 결과를 2018년 6월28일 알게 됐다면서 그해 7월3일 거듭 재재심을 청구했다.

국가는 김씨와 박씨의 재심사유나 무죄이유가 동일해 '하나의 재심사유'로 봐야 한다며 김씨를 기준으로 재심제기 기간이 지났으니 소송이 부적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울고법 재심에서 재판부는 "박씨 등에 대해 형사재심 결과 무죄판결이 확정된 사정은, 김씨에 대한 형사재심결과와 별개로 독립해 민사소송법상 재심사유가 된다"며 이번엔 재심제기 기간이 지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어 "'1차 재심'에서 재심사유로 인정한 사유 중 김씨가 위증죄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는 부분은 형사재심 결과 무죄판결이 선고·확정돼 더 이상 재심사유 존재를 인정할 근거가 될 수 없다"며 '1차 재심' 부당성을 인정, 이씨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도 여러 건의 유죄판결이 같은 이유로 재심을 통해 무죄로 뒤집힌 경우 각 무죄판결이 확정될 때마다 민사소송법상 재심사유가 새롭게 발생한다고 봐 원심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smit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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