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부터 9시까지 일주일에 6일씩"…中 996 물량공세에 韓 게임 속수무책
IT/과학 2019/10/10 07:0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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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중국 시안시 취장신구의 W호텔에서 열린 게임 e스포츠 대회 'WCG(월드 사이버 게임즈) 2019 Xi'an' 현장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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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매년 개최되는 국제게임전시회 '지스타'의 모습. © News1 여주연 기자

[편집자주]지난해 7월부터 주52시간 근무제가 첫 시행되면서 게임업계는 근무 환경에 일대 변화를 겪고 있다. 야근 및 밤샘근무를 뜻하는 '크런치모드' 등의 관행이 사라지며 근무여건이 개선됐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한편 생산성 저하로 중국산 게임에 매출 상위권을 내주는 등 경쟁력 저하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선진국처럼 '저녁이 있는 삶'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업종의 특성을 무시한 획일적인 근무단축으로 자칫 성장기반마저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가 교차하는 셈이다. 게임산업을 필두로 IT업계에 주52시간제 시행의 '명암'을 진단해본다.

(서울=뉴스1) 이수호 기자,박병진 기자 = ①'판교의 등대·오징어배' 옛말, 5시면 칼퇴…'상전벽해' 게임업계
철밥통은 칼퇴, 꿈돌이는 몰래 야근…속타는 회사는 근무감시 혈안'
"9시부터 9시까지 일주일에 6일씩"…中 996 물량공세에 韓 게임 속수무책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과 포괄임금제 폐지로 국내 게임업체들의 근무환경이 급변하는 동안 한국게임 시장은 생산성과 인건비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게임사의 놀이터가 되고 있다.

특히 중국 IT업계에 만연한 '996'(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일주일에 6일씩 일하는 것) 탓에 물량 경쟁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도 최근 자사를 찾은 국회의원들에게 획일적인 주52시간제 시행 이후 게임산업의 경쟁력 약화를 호소하면서 "중국은 6개월이면 만들 게임을 한국은 1년이 걸려도 만들어낼 수 없을 정도로 생산성이 뒤처져있다"고 지적했다.

◇996·싼 인건비 앞세운 中 게임사에 韓 "경쟁 불가능"

지난달 30일 모바일 앱 마켓 분석 사이트 게볼루션의 모바일게임 인기순위(다운로드·게임플레이 시간 기준)에 따르면 상위 10위 중 중국산 게임이 1·2·3위를 싹쓸이했다.

배우 하정우를 광고모델로 내세워 주목을 받은 중국 릴리스게임즈의 '라이즈 오브 킹덤즈'로 1위로 집계됐고 배우 소지섭을 앞세운 중국 4399 네트워크의 '기적의 검'과 X.D. 글로벌의 '오늘도 우라라 원시 헌팅 라이프'가 2, 3위를 차지했다. 이외에 중국 지롱게임즈가 만든 '라플라스M'과 '랑그릿사'도 각각 7위와 9위에 올랐다. 상위 10위권에 한국 게임(4개)보다 중국 게임(5개)이 더 많은, 가히 중국게임 전성시대가 열린 것이다.

국내 게임업계에선 이 같은 중국 게임 약진의 배경으로 '996'이라 불리는 중국 정보기술(IT) 업계의 근로 문화를 꼽는다. 996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일주일에 6일씩 일하는 것을 뜻한다. 보통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막바지 업무가 몰릴 때 주로 이뤄진다.

물론 현행 중국 노동법의 경우, 노동 시간을 하루 평균 8시간, 1주일 44시간을 넘지 못하게 규정하고 있다. 다만 이는 텐센트 등 일부 대기업에 국한된 것으로 단속도 쉽지 않아 중국의 중소업체 대부분 996 문화가 만연한 상태라는 것이 현지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상대적으로 싼 인건비도 중국 게임사의 경쟁력을 높이는 요소다. 중국 게임사의 대졸 신입 초봉은 대개 10만위안(약 1700만원)을 넘지 않는다. 반면 넥슨과 넷마블, 엔씨소프트 등 국내 대형 게임업체들의 대졸 초봉은 프로그래머의 경우 4000만원대, 그 외 직군은 3000만원대로 알려졌다. 중국 업체가 인건비 경쟁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한다.

결국 더 많은 인건비를 부담하며 주 52시간제를 준수하는 국내 기업이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게임업계 고위 관계자는 "중국의 경우 24시간 2교대로 게임을 개발하는 경우가 많다"며 "한국이 2~3년에 걸쳐 만들 게임을 중국은 1년이면 만든다.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선 체계적인 업무시스템이 필요한데 아직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게임 개발 주기 짧은데…서구권보다 노동유연성 오히려 더 낮아

국내 게임시장은 비교적 해고가 자유로워 노동유연성이 높은 서구권 국가와 비교해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 '워크래프트' 시리즈 등으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보유한 글로벌 게임사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하고도 올해 초 전체 인력의 약 8%를 감축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러나 최근 국내 게임업계에 노동조합이 잇따라 설립되면서 게임업계의 구조조정은 더 어려워졌다. 실제 대규모 인력재편을 앞둔 넥슨코리아는 지난해 9월 설립된 노조 '스타팅포인트'(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소속)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대규모 인력조정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9월3일 스타팅포인트가 연 집회에는 600여명의 직원이 모여 "고용안정 보장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집단행동에 착수한 상태다. 이로 인해 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는 같은 달 9일 사내 공지를 통해 "어떤 결정에서도 넥슨이 성장하기까지 함께 땀 흘리며 가장 큰 원동력이 되어준 직원 여러분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며 구조조정을 진행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피력하기도 했다.

문제는 국내게임 시장이 비디오 게임의 비중이 큰 서구권과 달리 개발 주기와 제품수명주기(PLC)가 짧은 모바일 게임 위주라는 점이다. 북미, 유럽보다 더 짧은 시간에 게임을 완성하고 단기간에 흥행 성패가 결정돼 주 52시간제와 낮은 노동유연성은 상대적으로 치명적인 약점으로 꼽힌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 교수)은 "미국이나 일본 게임사들은 오랜 기간 콘솔·PC 게임을 만들어 온 축적된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우리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게임을 개발한다"며 "반면 중국 게임이 우리나라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가운데 주 52시간제 도입과 포괄임금제 폐지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담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게임산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제조업의 관점에서 주 52시간제와 포괄임금제 폐지를 밀어붙일 경우 중소 개발사부터 차례차례 무너질 것"이라며 "현행 3개월인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1년으로 늘리고, 게임산업을 근로시간 단축 특례업종으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lsh599868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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