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희의 동네방네] 그 섬에 가고 싶다
사회 2019/08/30 09:0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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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희 관악구청장.(관악구 제공) © 뉴스1


(서울=뉴스1) 박준희 관악구청장 = 남해안 섬이나 바닷가 사람들을 빗대 쓰이는 말이 있다. 'OO동네 사람들은 고춧가루 서 말 먹고 물속(뻘속) 삼십리를 간다'는 것이다.

이 말이 내포한 뜻은 '독하다'가 아니라 '강인하다'는 쪽이다. 봄, 여름, 가을은 당연하고 한겨울 북풍까지도 맞서며 사철 거친 바다와 씨름 하다 보면 강인한 정신이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 없는 곳이 그 동네들이니까.

남해바다에 새알처럼 떠있는 섬에서 나고 자랐던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다. 지금은 인구가 많이 줄었지만 한창때는 3만여명에 이를 만큼 '반농반어'로 번성했던 섬이었다. 남녀노소 불문, 그만큼 일이 많았다는 뜻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논농사, 밭농사 틈틈이 생계형 어부로 바빴고 한겨울은 주수입원인 김 양식으로 더 바빴다. 농번기는 있어도 농한기는 없었던 섬, 초등학교 아이들도 학교에서 돌아오면 각자가 할 수 있는 집안 일을 거들어야 했다.

가장 신난 아이들은 집에 소가 있는 아이들이었다. 당시 섬의 소들은 축산업이 아니라 경운기를 대신하는 농사꾼으로 집안의 가보 1호쯤 되는 재산이었다.

봄부터 가을, 오후만 되면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줄줄이 소를 끌고 인근의 들판이나 산으로 향했다. 일단 소들을 풀밭에 풀어놓으면 아이들 세상이 열렸다. 비석치기, 고누게임, 자치기, 말타기, 공기놀이 등 아이들의 놀거리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압권은 풀이 많은 들판을 걸고 옆 동네 아이들과 정기전을 벌였던 씨름이나 윷놀이 대항전. 이날은 한가한 동네 어르신들까지 나와 응원할 정도였다.

소가 없는 집 아이들도 나름대로 바빴다. 마을 앞 갯벌에 내려가 저녁 국거리 용 바지락이나 꼬막, 아버지가 낚시 미끼로 쓰실 갯지렁이를 캤고, 대나무 끝에 낚싯줄을 매단 천대로 문절이나 붕장어, 심지어는 우럭도 낚았다. 불쏘시개나 땔감을 구하러 산으로 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것들은 그것들대로 아이들의 놀이였다.

육지와 달리 섬의 아이들에게 현금이 필요한 군것질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위한 주전부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겨울만 빼면 산딸기, 단감, 더덕, 칡, 맹감, 진달래꽃 등 천연 먹거리가 지천에 널렸다. 좀 더 큰 중학생 형들은 갓 잡아 올린 문절이를 통통 토막 내 된장에 찍어먹기를 즐기기도 했다.

겨울에는 어머니께서 밥지으실 때 아궁이에 몇 개 던져서 구워주시는 군밤, 군감자, 군고구마가 있어 아이들의 입은 여전히 즐거웠다. 섬 출신들의 체력이 나이가 들어도 비교적 강한 이유가 아마도 어렸을 적 이런 '웰빙'에 있지는 않을까?

지금처럼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는 못했지만 가족과 마을공동체가 역력하게 살아있었다. 비록 사철 바쁘고 힘든 일상이었지만 설, 정월대보름, 단오, 추석 같은 명절이면 마을 어른들이 모여 3박4일 농악놀이를 하며 온 동네를 돌았고, 청년들이 주최하는 마을 콩쿠르가 열렸다. 섬 곳곳에 씨름판이 벌어져 남녀노소의 환성과 탄식이 겹쳤다.

'박치기왕' 김일 선수의 레슬링이나 차범근, 김재한, 김진국이 뛰는 아세안컵 축구, 유제두 선수 권투중계가 있는 날이면 동네마다 한두대 있던 흑백 텔레비전이 마당으로 나오는 축제가 벌어졌다.

물심양면으로 바쁘고 정신 없는, 물질이 정신을 압도하는 서울의 일상 사이로 가끔 집 근처 관악산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면 물질은 조금 부족했을지라도 인정(人情)은 넘쳤던 그 섬의 산과 바다를 누볐던 동무들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이제 곧 추석이다. 평일도, 그 섬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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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e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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