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야오방 사망 30주기, 당국 감시속 기념식 치러져
월드/국제 2019/04/16 17:44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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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열린 공산당 당대회. 왼쪽부터 자오쯔양 총리, 덩샤오핑, 후야오방 총서기 - 바이두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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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야오방 서거 30주년 기념식 - 웨이보 갈무리


(서울=뉴스1) 박형기 기자 = 1989년 텐안먼 사태를 촉발했던 후야오방(胡耀邦)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 서거 30주년 기념식이 15일 당국의 감시속에 조용히 치러졌다고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16일 보도했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후야오방 서거 30주년을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후야오방 사망은 천안문 사태를 촉발한 사건이었다. 천안문 사건 30주년이 이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후야오방은 중국 공산당에서 민주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개혁파다. 1989년 4월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는 천안문 민주화 시위의 도화선이 됐다.

중국의 대학생들은 후야오방의 추모와 재평가를 요구하며 천안문 광장 시위에 나섰다. 앞서 후야오방은 1987년 학생들의 민주화 요구 시위로 인해 공산당 총서기직에서 물러났었다.

그의 30주기 기념식이 15일 열린 것이다. 후야오방과 부인 리자오(李昭)의 묘가 있는 장시성 공칭청에서 자녀 등 친지 20여 명이 가족 제사를 지냈고, 추모객 300여명이 몰렸다고 SCMP는 보도했다.

친지들이 머문 호텔 밖에는 수십 명의 공안이 감시를 하는 모습이 포착됐다고 SCMP는 전했다.

통상적으로 중국 최고지도자들이 사망 후 베이징 바바오산 혁명공원 지도자 묘역에 안치되지만 후야오방은 장시성 궁칭청에 묻혀야만 했다. 생전에 복권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날 저녁 후야오방의 고향인 후난성 류양현에선 추모 문화행사가 열렸고, 16일엔 친지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중국 관영 매체는 후야오방 서거 30주년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후야오방 하면 천안문 사건이 연상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후야오방은 후진타오 주석 시절인 2000년대 들어 명예회복이 이뤄지기 시작해 탄생 백주년을 맞은 2015년 시진핑 주석이 탄생 백주년 기념식에 직접 참석해 공식 복권됐다.

시 주석이 후야오방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것은 그의 아버지 시중쉰(習仲勳)이 바로 후야오방 덕분에 복권됐기 때문이다. 시중쉰은 후야오방의 오른팔이라고 불릴 정도로 후야오방과 가까웠다.

시 주석은 그러나 후야오방 서거 30주년 기념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후야오방 하면 천안문 사건이 연상되기 때문일 터이다. 중국 공산당은 천안문 민주화 시위를 ‘폭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6.4 천안문 사건 발생 30주년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sinopar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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