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청30년]㊤시흥시 ‘지나온 30년, 나아갈 100년’ 대도약 준비
전국 2019/01/05 10:0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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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시청사 전경.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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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시청 개청 당시, 1989년©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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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산업도로변에 형성된 신천동 시가지, 1990년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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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곧신도시 야경, 2018년 © News1

[편집자주] 2019년 기해년은 경기 시흥시가 개청한 지 30년이 되는 해다. 지난 세월 시흥은 경제 발전과 산업화를 온몸으로 경험하며 끊임없이 그 모습을 바꿔왔다. 미래 시흥은 4차 산업혁명 전진기지로, 서해안권 관광 요충지로, 시민들이 행복한 대도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대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시흥의 지난 30년사를 2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서울 금천구 시흥동서 유래...1989년 1월1일 시 승격
1997년 장현동 신청사로 이전...2018년 배곧동 신설

(시흥=뉴스1) 조정훈 기자 = ◇서울 금천구 시흥동서 유래…1989년 1월1일 시흥시 승격

경기 시흥시의 명칭은 현재 서울시 금천구 시흥동을 중심으로 한 일원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이 곳은 조선 정조 19년(1795년) 정조가 부왕인 사도세자의 능행을 위해 경기 안양에 만안교를 가설한 후 고려 성종 때(991년) 금주의 별호를 취해 시흥현으로 개칭하면서 시흥이란 명칭을 갖게 됐다.

시흥현은 100년 후인 1895년 시흥군으로 승격됐다. 1914년 안산군이 폐지되고 1989년 1월 시흥군의 소래읍, 군자면, 수암면이 시흥시로 승격됐다.

시 승격 4일후인 1월 5일 시 보건소 자리에 시흥시청사가 문을 열고 개청식을 가졌다. 시흥의 새 시대를 여는 역사적인 사건이었으며 도시의 잠재력을 깨워 수직의 도약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승격 당시 시흥시는 9개 행정동, 33개 법정동으로 편제됐다. 1991년 9월 중림·연성출장소가 각각 중림동과 연성동으로 승격되고 1995년 4월 수암·장상·장하동과 화정동 일부가 안산시에 편입됐다.

1995년 시흥시는 시민통합과 지역 간 균형발전을 이루기 위해 신청사 공사를 시작했다. 이는 지리적 특성상 신천, 연성, 정왕지역으로 생활권이 분리돼 있었기 때문이다.

1997년 7월 1일 시 중심부인 장현동에 새로운 둥지를 틀고 청사를 이전했다. 연성권은 행정타운 기능을 가진 명실상부 시흥의 중심부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시화지구 개발로 정왕동의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자 1999년 9월, 2002년 3월, 2003년 12월 등 세 차례에 걸쳐 정왕동이 정왕본동과 1, 2, 3, 4동으로 분동됐다. 2010년 9월엔 능곡택지지구 개발로 인해 능곡동이 연성동에서 분리됐다.

2014년 3월 연성동에서 장곡동이, 군자동에서 월곶동이 각각 분리됐으며 2018년 배곧동이 신설돼 현재 18개 행정동, 36개 법정동으로 편제된 상태다.

1995년 6월 27일에는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됐다. 민선 1기 정언양 시장이 취임한 이후 현재 민선 7기 임병택 시장이 시정을 이끌고 있다.

시 승격 당시 인구 9만 3000명에서 2018년 9월 1일 현재 외국인 3만4000명을 포함 총 47만3000명이 터전을 이룬 수도권 중견도시로 성장했다.

◇모호한 정체성 최대 고민…도시계획 착수

1989년 시 승격 이후 시흥시의 사회 문화적 차원의 가장 큰 문제 거리중 하나는 도시의 중심지가 형성돼 있지 않아 주민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점이었다.

부천군의 일부였던 소래지역, 안산생활권에 속한 수암, 군자지역 인근 광명시, 서울 구로구 및 안양시에 접한 과림·매화·목감동 일부, 인천시에 접하면서 별도 공간으로 조성된 월곶신도시 등이 당시 시흥시의 골격을 이루고 있었다.

특히 1990년 이후 급격히 성장한 시화간척지의 신도시가 각기 별도의 생활권, 활동영역, 주민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대두됐다.

이에 따라 시흥시는 도시계획을 통해 시의 새로운 중심권을 개발형성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1990년대 초 시화간척지 위에 건설된 시화공단과 그 배후도시로 들어선 정왕동의 계획도시는 일거에 13만여명의 인구를 시흥시 관내로 유입시켰다.

시흥시의 ‘2020년 도시기본 계획’을 보면 시의 생활권을 크게 소래권과 정왕권의 두 권역으로 나누고 중심생활권으로 목감지역 등을 설정하고 있다.

◇개발 본격화 된 1995년 이후 연간 25% 인구증가

2003년 ‘시흥도시 계획 재정비’와 2004년 ‘시흥시 통계연보’ 등에 따르면 2003년 시의 인구는 37만9336명으로 1990년 10만7190명 대비 280%가량 증가했다. 15년여 만에 4배에 가까운 인구성장을 보였다.

인구 증가 특징은 자연적 증가율이 낮은 반면 시화공단 및 주변지역 개발로 인해 수도권 등 타 지역 인구 유입이 급증한 데 따른 사회적 증가율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 시흥시 인구는 1989년에서 1994년 사이 평균 8% 내외로 증가세를 보이다가 1995년 이후 각종 도시개발 및 수도권 인구유입 등 수년 동안 연 25% 내외의 급증세를 보였다.

이는 관내 신천·은행동 일대에 대규모 택지개발사업이 진행 돼 비교적 규모가 큰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것과 시화공단 및 주변지역 개발로 인해 수도권과 타지역으로부터의 급격한 인구유입에 따른 것이다.

시흥시의 지리적 중심부인 연성지구에 택지를 조성하는 한편 그 초기 사업으로 시청을 이전하고 주택지들을 차례로 개발해 시가지의 초석이 놓였다는 점은 특징적이다.

시흥은 2003년 능곡지구를 시작으로 목감지구, 장현지구, 은계지구, 거모지구, 하중지구에 이르기까지 대규모 택지개발 사업이 줄을 이었다.

능곡지구는 2003년 공사를 시작해 2008년 입주를 시작했다. 능곡동 일원 29만평(96만2000㎡)에 주민 1만7265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

◇2009년 배곧신도시 개발계획 수립 시행 중

주목할 만한 곳은 배곧신도시다. 이곳은 1986년 12월말 한국화약그룹(현재 한화)이 화약성능을 시험하기 위해 만든 매립지였다.

1996년 매립지가 준공됐지만 주변에 아파트가 들어서 폭약 실험을 하기가 어려워졌다. 이후 그룹은 여러가지 방식의 개발 계획을 세우고 추진했지만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시흥시는 2006년 이 곳을 매입하기로 결정하고 3년 후인 2009년 토지대금 5600억원에 대한 지급 계약을 체결했다.

시흥시는 배곧신도시를 교육과 일자리가 보장되는 복합자족도시로 건설하기 위해 2009년 도시개발구역 지정 및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2011년 10월 실시계획을 인가 받아 도시개발을 시작했다.

4년 후인 2015년 7월 배곧신도시에 첫 입주가 시작됐다. 이듬해 12월에는 단지조성공사를, 2018년 7월에는 공원, 녹지 등 조경공사를 완료했다.

현재 배곧신도시는 광역교통개선대책에 따른 도로 공사와 교육인프라 확충을 위한 초·중학교(각 1개소) 건립공사가 추진 중에 있다.

허허벌판이던 군자매립지에 명품 교육도시의 비전을 담아 세운 배곧신도시는 시흥의 미래로 곧잘 비유되곤 한다.

시흥시는 배움곳이라는 의미의 배곧 이름 그대로 이곳을 미래 시흥을 이끌 인재들을 키우는 도시로 만들기 위해 서울대 시흥캠퍼스를 유치하고 최첨단 연구 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배곧신도시는 지자체가 직접 사업을 시행하며 소비자의 신뢰를 높였다는 점에서 2015년 ‘제9회 대한민국 소비자 신뢰 대표 브랜드 대상’ 신도시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jjhjip@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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