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미현의 방토크②]김형석, 한한령도 뚫은 신뢰의 힘 "中과 사업 활발"
연예 2017/11/11 09:0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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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위미디어. 작곡가 김형석 키위 미디어 회장 인터뷰. © News1 권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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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6. 키위미디어. 작곡가 김형석 키위 미디어 회장 인터뷰. © News1 권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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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6. 키위미디어. 작곡가 김형석 키위 미디어 회장 인터뷰. © News1 권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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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6. 키위미디어. 작곡가 김형석 키위 미디어 회장 인터뷰. © News1 권현진 기자

(서울=뉴스1) 황미현 기자 = ※K팝을 선도하고 이끄는 대표 주자들의 '방'을 직접 찾아가는 인터뷰 코너입니다. 작업실 및 녹음실, 연습실 등 K팝이 탄생하는 공간에서 이뤄진 한 걸음 더 들어간 토크를 전해드립니다.

"30년간 작곡가로 계속 활동하는 원동력이요? 그런거 없어요. 다른거 할줄 아는게 없거든요.하하. 천성에 따라가는 것일 뿐이에요."

지금으로부터 30년전, 1988년 김형석의 첫 작곡의 결과물은 김광석의 곡 '사랑이라는 이유로'다. 좋은 작곡가과 좋은 가수의 만남이었다. 이후 김형석은 30년간 발라드 작곡계의 거장으로 군림했다. 현재까지 저작권 협회에 등록된 곡수만 1200곡이 넘고 김광석을 시작으로 변진섭, 신승훈, 김건모, 박진영, 임창정, 박정현, 성시경 등 그를 거친 가수들은 모두 히트했다.

 
작곡가 김형석은 기업인이기도 하다. 이효리, 킬라그램 등이 소속된 키위미디어그룹의 회장이다. 그러나 사업적인 일보다는 자신이 가진 음악적 그릇 안에서 다양한 컬래버레이션을 구상하고, 음악을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기회의 장을 제공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비즈니스 부분을 담당하는 일은 정철웅 대표이사에게 일임했다.

김형석 작곡가는 중국 시장에 진출, K팝의 확장에도 관심을 보이는 중이다. 국내 운영 중이던 아카데미 케이노트 사업을 중국에 진출시켰다. 이 때문에 그의 사무실 안에는 '중국어 기초' 교재가 한켠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는 "2010년에 중국과 인연을 맺었다. 차근히 중국 내 K팝 아카데미 도입을 시도했고 점차 늘려나가는 중이다. 사드 문제가 해결된다면 분명 큼지막한 기회들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석 작곡가는 최근 몸이 열개라도 부족하다. 다양한 활동과 더불어 정치적인데도 관심이 높다. 김형석 작곡가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에게 '미스터 프레지던트'라는 헌정곡을 선물했고, 이 노래는 지난 7일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만찬장에 울려퍼졌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던 최근 작곡가이자 기업인, 문화인으로 24시간을 알차게 쓰고 있는 김형석 작곡가의 작업실을 찾았다. 피아노와 팝아트 소품들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있던 그의 방에는 과시보다는 그의 철학이 소박하게 베어있었다.

[황미현의 방토크①]에 이어 계속.

-키위미디어그룹 회장직을 맡고 있다.

"결국은 사람이다. 본업이 사업가는 아니지만 사업가가 매일 말하는 것이 사람이다. 정철웅 대표랑 인연을 맺은지 20년이 됐다. 박칼린은 94년에 알았으니까 23년 정도 됐다. 장원석PD와도 10년이 넘었다. 오래된 사이들로 연계된 집단이다. 요는 우리 모두가 오랫동안 이 일을 버리지 않고 계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것이 신뢰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알맞은 시기에 한 회사에서 뭉친거다."

-음악 외적으로 회장으로서 신경쓰는 일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중국에 케이노트 차이나를 진출시킨 것에 많이 신경쓰고 있다. 340억 규모의 계약이다. 한국에서 담을 그릇이 작다고 판단했다. 현재 사드 때문에 주춤하긴 하지만 시너지가 발휘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키위미디어는 사실 석탄을 팔던 회사다. 엔터테인먼트로 업종을 바꾼지 1년 정도 됐다. 1년새 갑자기 새 세상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다만 차근히 쌓아 올려나가고 싶다. 투자를 했던 '범죄도시'의 성과가 좋았고 내년부터는 음악적으로 매출이 날 것들이 있다. 더불어 최근엔 중국 화련과 3000억 규모로 유통 사업을 계약하기도 했다. 사드가 진정된 이후에는 실질적인 수익이 많이 날 것으로 예상한다."

-뮤직아카데미인 케이노트를 중국에 진출시킨 이유는.

"중국과 인연을 맺은게 2010년 '슈퍼스타K'가 방송될 때였다. 그때 내가 후난TV에서 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또 이후 중국에서 남자 30명을 데리고 와서 국내에서 인큐베이팅 시스템으로 아이돌 제작에 나서기도 했다. 그렇게 중국과 인연을 맺고 중국에 K팝의 노하우를 전수하고자 아카데미를 세웠다. 상하이에 지점이 있는데 내년 북경과 심천, 광저우, 산둥에 지점을 늘릴 계획이다. 중국은 아직 아카데미를 기반으로 실용음악을 배우는 기반이 잘 되어 있지 않아서 적극적으로 나서게 됐다."

-중국어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저기 책장에도 중국어 교재가 꽂혀 있지만 거의 4페이지 정도 진도가 나가다가 말았다. 정말 힘들다(웃음). 언어도 계속 노력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지금은 벙어리 수준이긴 하지만 언어의 벽을 절실히 느끼고 있기 때문에 계속 노력해보려고 한다. 그런데 중국어를 너무 유창하게 해도 사람이 인간미가 조금 떨어지지 않나? 하하."

-중국과 협업 중인데, 신뢰를 쌓기가 수월했나.

"케이노트 차이나(뮤직 아카데미) 외에 중국과 하는 것이 많다. 리얼 비즈니스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참 신기하다. 회사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보다 개개인의 신뢰를 굉장히 중요시 여긴다. 나는 수년 동안 개인적으로 중국 주요 인물들과 신뢰를 쌓았다. 중국 역시 처음엔 경계하고 시험하기도 한다. 나는 그 과정을 모두 거쳤다. 중국은 시험이 끝나면 무한한 신뢰를 주는 나라다."

-사드로 K팝이 주춤한 상황인데, 어떻게 보고 있나.

"곧 해결될 것 같다. 중국 전당대회가 끝났고 마무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카리스마를 보여주기 위해 주변국에 대한 견제를 보여줬던 것이 아닌가. 이제 전당대회가 끝났으니 양국간 교류를 위해서는 사드 문제가 곧 해결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중국 사업과 관련한 앞으로의 계획은.

"중국 사업은 앞으로 3년에서 10년을 바라보고 하는 것이다. 꾸준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믿음을 쌓아 나가보려고 한다."

-한국에서의 일과 중국 일을 병행하다보면 육아에는 힘쓰기가 어려울 것 같다.

"사실 시간이 많지는 않다. 그러나 아이들 돌볼때가 제일 행복하고 좋다. 아이들을 보다보면 나까지 아이가 되는 느낌이다. 무언가에 아무런 보상 심리 없이 베풀 수 있다는 것이 좋다. 세상을 보는 기준도 달라졌다. 아이가 없었을 때는 미래에 대한 계획이 없이 살았는데 이제는 아이로 인해 내 삶을 더 똑바로 볼 수 있게 됐다."

[황미현의 방토크③]으로 이어집니다.


hm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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